세대 문제에 대한 단상

2021.07.07 03:00 입력 2021.07.07 03:02 수정

[송두율 칼럼]세대 문제에 대한 단상

최근에 ‘이대남’이니 ‘이대녀’라는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386’이나 ‘586’으로 지칭되는 세대 문제와 관련된 조어가 등장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새로 등장한 이 조어가 남녀를 구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다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일상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세대교체’처럼 세대는 우선 사회적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생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일찍부터 등장한 계급이나 계층 문제보다 세대 문제는 성(젠더) 문제와 함께 비교적 뒤늦게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서 세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배경에는 프랑스혁명 이후 과거 사회질서와의 단절 과정에서 인간의 삶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나누어 보려는 강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젊음과 낭만이 분출해 내는 힘에 초점을 둔 세대에 대한 여러 생각은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세대를 자연과 문화 사이에 걸린 복합적인 문제로 보고 본격적인 사회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사회학자는 카를 만하임(1893~1947)이다. 그의 <지식사회학>에 수록된 논문 ‘세대 문제’(1928)는 세대 문제 연구에서 지금도 여전히 비켜갈 수 없는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유대계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였지만 나치 집권으로 영국으로 망명했다.

세대 문제에 접근할 때
‘이준석 돌풍’의 맥락에서 보듯
그 세대의 상징적 인물에 초점

또한 단절에 방점을 두다 보니
세대 간의 갈등만 강조되고
세대 간의 소통 문제는 간과

세대를 단순하게 30년 또는 15년 등으로 구분하려는 생물학적 접근과 달리 만하임은 우선 세대 문제와 사회 변화를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했다. 세대는 개인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구체적인 조직의 성원이 아닌, 단순한 관계라고 파악했다. 이 점에서 세대 문제는 계층 문제와도 유사성을 지닌다.

사람은 모두 어떤 세대에 속하기 마련이다.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처럼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지만 문화적으로 구성된 어떤 의식과 기억계층에 속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어떤 사건에 대하여 동년배와 함께 비슷한 관점에 서게 된다. 세대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문화의 틀 속에서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기억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적인 의미의 고향이 뿌리를 같이한 사람들 사이에 친근감을 자아내듯이 특히 정치사회적인 큰 격변기에 얻은 체험과 기억은 일종의 ‘시간적인 고향’을 위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정치적 세대’는 항상 세대 문제의 중심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던 만하임이 세대 문제를 제기하게 된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세대 문제에 있어서 ‘68세대’는 자주 논의되는 대상이다. 전후의 권위주의와 반공주의의 두꺼운 벽을 부순 이 세대의 저항 중심지 중 하나였던 프랑크푸르트에서 20대 중반을 보낸 나에게도 ‘68’은 특별한 숫자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같은 체험공간에서 비슷한 기억을 나눈 세대라고 해서 모두 한 무리로 취급할 수 없다. 세대갈등의 표현방식이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내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사건도 있었다. 1969년 4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 아도르노(1903~1969)의 강의실에 세 여학생이 상의를 벗은 채 꽃을 들고 ‘제도로서 아도르노는 죽었다’고 그를 희롱했다. ‘유방 저격’이라고도 불렸던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이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교수를 만나려면 정장을 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이 사건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아도르노는 넉 달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뒤에 오는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과격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같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문화를 공유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독일 학생동맹’(SDS)은 1968년 저항운동의 핵심이었지만 이의 노선을 비판한 보수적인 학생운동도 있었고, 지식인 중심의 저항운동이다 보니 동년배의 노동자는 당연히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같은 기억을 나누었던 세대의 대표적이거나 상징적인 인물이 자신을 포함해서 그의 세대가 함께했던 정서, 경험 그리고 행동양식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예도 적지 않다. 서독 68세대의 정치적 성향 가운데 가장 극좌적이었던 ‘적군파’를 법정에서 변호했던 호르스트 말러(1936~)는 후에 1990년대부터 반유대적인 극우주의자가 되었다. 미국 신보수주의(네오콘)의 대부 격인 두 인물, 어빙 크리스톨(1920~2009)과 네이션 글레이저(1923~2019)도 젊은 시절에는 트로츠키주의자였다. 그러나 점차 우경화하면서 1960년대 ‘신좌익’의 반전운동을 앞장서서 비난했다. 두 사람 다 유대계로서 ‘가난한 자의 하버드’라 불리는 뉴욕시립대학 출신이다.

한국 사회의 세대 논쟁을 뒤돌아보아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른바 386(586)세대로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물 가운데도 자신의 이력서에서 젊은 날의 흔적을 깡그리 지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과거의 가치관에 갇혀 있으면서 기득권을 독점하고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위선적인 세대라는 비난도 받는다.

세대 문제와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염두에 둘 때 한국에서 세대라는 개념은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개인 이력을 확대 해석해서 집단화하는, 이력서에 근거한 은유(隱喩)로서 세대 문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86(586)세대와 관련된 중앙일보의 한 여론조사(2019년 9월27일)와 이른바 ‘이대남’과 ‘이대녀’ 문제를 다룬 KBS의 ‘세대 인식 집중 조사’(2021년 6월24일)가 있다. 앞의 여론조사는 설문에 이미 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대 응답자의 3분의 1가량이 ‘386(586)세대’의 뜻을 모르기에 설문에 앞서 이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관심 밖의 주제였다. ‘386세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단어를 하나만 꼽아달라’는 설문에서 1위가 ‘민주화 투쟁’이었고 이어서 ‘내로남불’이었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는 설문에서는 1위가 조국이었고, 이어 안철수였다. 그러나 조국과 안철수가 함께 선정될 수 있을 정도로 이들 사이에 ‘정치적 세대’의 이력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뒤에 언급된 KBS의 집중 조사를 둘러싸고 특히 논란이 많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20대의 투표 성향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문항의 응답 결과에 대한 해석을 일부 매체는 특별히 문제 삼았다.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남에게도 나눌 것이다’라는 설문에 청년 남성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해석 때문이다. 보수 야당에 몰표를 던진 반공동체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대남’을 겨냥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역시 늙음과 젊음을 정적-동적, 닫힘-열림, 만족-욕구 등 다른 관계 안에서 보려는 20대를 과거처럼 보수-진보 또는 우익-좌익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과거와 달리 한 사회에만 갇혀 있는 20대가 아니라 자기실현을 극대화하려는 세대다. 열린 지구촌에서 오늘을 함께 사는 이른바 ‘M세대’의 성원이기도 하다.

세대 문제 접근에 있어서 흔히 자기과시가 강한 그 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준석 돌풍’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체험공간을 같이했으나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게 된 이른바 ‘조용한 세대’의 이야기는 쉽게 잊는다. 또 다른 문제는 세대 문제 접근이 주로 ‘단절’에 방점을 두다 보니 세대 간 갈등만 강조되고 세대 간 소통 문제에는 별로 눈을 돌리지 않게 된다. 최근 들어 심리분석과 교육학이 세대 간의 지속적인 ‘감정유산(感情遺産)’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공성(公共性)’을 위한 세계는 오로지 한 세대를 위해 만들어졌거나 또는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서만 계획된 것이 아니다. 유한한 인간의 짧은 삶의 구간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나 아렌트(1906~1975)가 <인간의 조건> 속에 남긴 경고가 생각난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갈등은 아직 정치적 이념 갈등처럼 첨예하게 표출되지 않지만, 최근 페미니즘 논쟁과 더불어 세대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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