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검찰

2021.06.09 03:00 입력 2021.06.09 03:03 수정

[송두율 칼럼]언론과 검찰

반세기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인문계 학부를 졸업하고 취직할 수 있는 직종 가운데 신문기자는 그래서 단연 인기가 높았다. 당시에 ‘언론고시’라는 말은 없었으나 주요 일간지 기자 채용시험은 경쟁률이 높았다. ‘고등고시’ 또는 ‘사법시험’이라고 불렸던 법조계의 등용문을 통과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되면서부터 언론통제가 노골화되자 1974년 10월 동아일보의 일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12월 말부터 광고가 무더기로 해약되었고 이에 겁먹은 신문 경영진이 유신정권의 요구에 굴복하여 1975년 3월, 사내에서 농성 중이던 130여명의 기자와 사원들을 내쫓은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언론계에 발 들여 놓았던 친구나 선후배 가운데 이런 투쟁에 적극적으로 합류한 사람도 있었고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부 판사들 가운데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 법복을 벗은 예는 있었지만 정작 검사 중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기레기’와 ‘개검’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의 언론과 검찰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될 당시
그 둘의 비정상적인 관계 경험
‘조국 사태’로 검·언 유착 재확인
언론과 검찰 개혁의 주인은
깨어있는 시민뿐이라고 확신

이는 개인적인 성향과도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직장이 갖는 조직문화의 특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많은 정보를 추적하고 이의 내용을 독자나 시청자에게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서 자유분방하게 뛰어야 하는 언론사와 위계질서가 확실한 검찰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나 검사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에는 큰 차이가 없다. 언론 자유, 공정한 보도, 품위 유지, 정당한 정보 수집, 올바른 정보 사용, 사생활의 보호, 취재원의 보호, 오보의 정정, 갈등과 차별 조장의 금지, 광고와 판매 활동 금지를 규정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과 사법권 독립의 수호, 공정성 및 청렴성, 직무의 성실한 수행, 품위 유지, 경제적 행위의 제한, 정치적 중립을 내세운 ‘법관윤리강령’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처음 들었을 때 곧 이해할 수 없었던 ‘기레기’나 ‘떡검’이니 ‘개검’, 심지어는 ‘색검’이니 하는 비속어는 그러면 왜 생겼는가.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1878~1949)는 “좋은 법조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법조인이다”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기자에게도 해당한다는 주문이다. 좋은 언론인은 먼저 공정치 못한 기사나 논평을 자기가 내보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는 언론인이 아니겠는가. 양심적인 언론인과 법조인이 함께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고 공정한 질서 수립의 길잡이가 된다면 그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검언 유착’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일 때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2003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 여름까지 나는 언론과 검찰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직접 경험했다. 혐의 내용을 ‘사실’로서 만들기 위해서 검찰은 여론몰이를 잘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신문사나 방송은 누구보다도 먼저 검찰의 정보원에 접해야 한다.

독일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구스타프 프라이타크(1816~1895)의 희극 <언론인>에서 주인공 슈모크는 “온 세상이 언론에 대해서 비난하지만 모두 자신을 위해서는 이를 이용하고 싶어 안달한다”고 말한다. 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보도해서 해당 언론매체에 곧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고 비난 반 자기 자랑 반 하던 검사도 있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기자나 검사가 왜 그렇게 특별히 문제가 되는가. 기자나 검사가 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인가, 아니면 이들이 몸담은 언론계나 법조계가 문제인가.

비록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중앙일간지의 기자 봉급이 그저 그렇고, 또 유령 신문의 기자 명함을 내밀며 사기행각을 벌이는 일도 종종 발생해서 “형사와 기자에게는 딸을 안 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의 언론계 이야기다. 위에서 언급된 슈모크도 돈 때문에 “나는 좌로, 또 우로도 글을 썼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도 쓸 수 있다”고 자조적인 투로 말한다.

언론고시를 통과하면 나름대로 생활할 수 있는 지금의 여건에서 어떤 방향으로도 기사나 논평을 써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조중동’이라는 약자로 표기된 ‘언론재벌’이나 ‘재벌언론’이 보여주는 경제력과 이것이 지니는 막강한 정치력을 가진 자신의 배경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닌가. 별세하기 얼마 전에 리영희 선생은 기자의 덕목으로 가난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전문적인 지식, 올바른 세계관 그리고 성실성을 특별하게 강조했다.

코로나19 관련 뉴스는 지금 지구촌 어디든지 긴급한, 또 공적인 성격을 띤 ‘경성(硬性)뉴스’에 속한다. 현 정부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백신 접종에 관해 일부 언론은 여전히 전문적인 분석보다 정치적인 진영논리에 기대어 정부의 방역 실패와 백신 수급이나 접종의 난맥상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사회적 불안을 오히려 조성한다. 이는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 한국이 보여준 투명성을 높이 사는 해외의 전문기관 평가나 언론 보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비록 국내용의 경성뉴스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 언론을 채우고 있는 뉴스가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다. 특히 검찰개혁 문제와 맞물린 이 중요한 사건을 일부 언론은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한 파편적인 내용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흥미본위의 ‘연성(軟性)뉴스’로 만들고 있다.

내가 37년 만에 귀국해서 한국의 권력기관 가운데 가장 긴 악연의 시간을 가진 기관은 바로 공안검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곧 마련한 검찰개혁을 위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조차 대통령의 ‘학번’이 어떻게 되느냐는 한심한 질문까지 등장해서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다.

선출되지 않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검찰이 자정 능력을 발휘해서 개혁의 길에 동참할 것을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조국 사태도 그 본질에서는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 정권을 위한 검찰개혁이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있다. 그러나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공수처’의 설립, 검사동일체의 폐지 등 검찰개혁에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졌다고 느껴진다. 아직은 불충분하지만 법적, 그리고 제도적 틀도 마련되기 시작했다.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연합 재판소’는 2019년 네덜란드 검찰이 다른 가맹국의 시민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에 대해 네덜란드 검찰의 독립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독일에서도 독립성이 부여되는 사법부의 판사와 달리 검사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상명하복의 조직 성원이기에 ‘자유롭지만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은 늘 있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독일은 물론, 이와 비슷한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에서도 검찰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인권문제에 있어서 높이 평가받는 이 나라들과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유럽에서는 ‘검찰의 탈법무부화’가 검찰개혁의 중심과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히려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다.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벌어진 갈등도 검찰이 오히려 법무부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것이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지만 공평한 사회를 가꾸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검찰의 개혁문제와 더불어 비밀과 터부, 무능과 무지로 여전히 건강한 공론장의 형성을 방해하는 언론의 개혁과제에 대해서 특별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 남은 1년 안에 이 숙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언론과 검찰이라는 쌍두마차를 개혁 방향으로 몰고 가는 고삐를 꾸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틀어쥘 수 있는 주인은 오로지 깨어 있는 시민뿐이라는 확신만 나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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