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제약사와 선진국의 위험한 거래

2021.08.16 03:00 입력 2021.08.16 03:04 수정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특수를 누리는 기업들이 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거대 제약사들이다. 화이자는 올해 코로나 백신 매출액 전망치를 335억달러(약38조6590억원)로 설정했다. 모더나의 올 상반기 매출은 62억9100만달러(약 7조2100억원)로 전년 대비 84배 증가했다. 모더나에선 43억달러의 재산을 신고한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 등 다수의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개발한 스타트업 바이오엔테크의 CEO 우구르 사힌은 40억달러(약 4조6760억원) 상당의 재산을 모았다.

박영환 국제부장

박영환 국제부장

코로나 백신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미지의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을 신속하게 개발한 기업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연구·개발의 대가를 챙기는 것도 당연하다. 시민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미국의 산업 분야별 호감도 조사를 보면 팬데믹 이전까지 제약산업은 늘 꼴찌였다. 갤럽의 2019년 조사에서 제약산업에 대한 호감도는 27%에 불과했다. 생명이나 사회적 책임은 뒷전이고 오직 이윤만 추구하는 거대 독점 제약사들은 탐욕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인 올 3월 이뤄진 진보 싱크탱크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의 조사에서는 56%의 응답자가 제약산업에 호감을 드러냈다. ‘팬데믹 영웅’의 등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옥스팜을 비롯해 70여개 자선단체로 구성된 ‘피플스 백신 얼라이언스(PVA)’는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대형 제약사들이 코로나 백신을 독점하지 않는다면 백신 접종 비용은 지금보다 5배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적자금의 도움으로 도스당 1.2달러에 개발한 백신을 국제 백신공유 프로젝트인 코백스에도 5배 비싸게 공급했다. 그것도 모자라 화이자는 25%, 모더나는 10% 가격 인상을 선언했다. 독점적 공급자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한껏 누리고 있다. 이 정도면 ‘백신 강도’다. 백신 제약사들은 전례 없는 지구적 위기에서 세계인을 인질로 잡고 더 많은 돈을 뜯어내려 한다. 제약사들에 대한 세계 시민들의 호감이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큰 문제는 거대 제약사들의 독점적 이윤 추구와 백신 민족주의가 결합해 세계적 백신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신 공급 불균형은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지난 3월 기준 각국의 인구 대비 백신 구매량을 보면 영국 340%, 캐나다 335%, 미국 197% 등인 데 비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5%대에 불과하다. 나만 살면 된다는 선진국들의 근시안적 이기주의와 거대 제약사들의 독점적 백신 가격·공급 통제권이 만들어낸 결과다.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제약사들은 값을 더 쳐주는 선진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PVA에 따르면 화이자와 모더나는 코로나 백신의 90%를 부유한 국가에, 생산비보다 24배 비싸게 팔았다. 그들은 이제 선진국을 향해 3차 부스터샷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거대 제약사들의 독점이 유지되는 한 값싼 코로나 백신의 신속하고 공평한 공급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백신이 부족하다는 후진국들의 아우성에는 관심이 없다. 세계인의 안전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팬데믹 대응을 위해 거대 제약사들의 코로나 백신 지식재산권을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란 것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말한다. “너무나 많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이익과 특허권은 두번째가 돼야 한다.”

제약사들은 지재권은 혁신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이윤은 기업 혁신의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몇개 제약사들이 치명적 전염병에 노출된 전 세계인을 인질로 잡는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글로벌 팬데믹 대응을 독점 제약사의 손에 온전히 맡겨둘 게 아니라 세계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와 인간의 생명을 시장자유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에 넣고 갈아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백신 불균형의 직접적 피해자는 개도국이나 후진국이지만 그 파장은 선진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 인도에서 시작된 델타 변이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선진국들은 백신 강도들과의 위험한 거래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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