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스포츠’의 희열과 공허함 사이

2021.11.11 03:00 입력 2021.11.11 03:06 수정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즐기는 스포츠’의 희열과 공허함 사이

장안의 화제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를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강렬한 캐릭터와 높은 수준을 탑재한 댄서들의 에너지가 화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분야와 장르를 불문하고,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모두가 ‘즐기는’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스우파>의 즐거움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블루’의 처방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모두의 관심과 성원을 받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1000% 펼치고 나서 경쟁했던 상대방과 뜨거운 포옹을 하는 장면이란, 우리의 생애에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강렬한 감정이다. 그것도 거의 모든 육친적 관계가 끊어진 코로나 상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그래서 우선 그들이 즐거웠고 보는 사람도 즐거웠다.

“경기를 즐겨라.”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이 말의 의미를 촉발시킨 계기는 2002 한·일 월드컵이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를 투입하면서 “경기를 즐겨라”라고 말했다. 실은, 당시 1년여 동안 전개된 월드컵 대표팀의 훈련과 경기 전체를 다섯 권 분량으로 기록한 최진한 코치의 비망록에 따르면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또 거의 모든 경기들에서 히딩크 감독은 같은 주문을 했다고 한다.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도 히딩크 감독은 “가서, 즐겨라”라고 말했다.

그 후 많은 감독들이 이 말을 사용했고 어느덧 넓게 퍼지는가 싶었는데, 한편 논쟁이 되기도 했다. 즐기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가, 승부가 걸렸는데 말이 되는가. 이런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아예 “이빨 보이고 히히덕거리다니”라고 깎아내린 의견도 있었다.

이런 의견들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대표로 선발되고 메달을 따는 것은 숭고한 것이며, 그에 도달하려면 혹독한 과정을 견뎌야 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거나 ‘고진감래’ 같은 말들이 스포츠의 윤리 규범이었다. 그것은 규율이 되었고 통제와 훈육의 동기가 되었다. 수십년 지속되어 지금도 한국 스포츠계를 지배하는 이러한 관습에서 ‘즐겨라’라는 말은, 튕겨나오는 공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즐겨라’라는 선언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우선 즐긴다는 것이 일각의 비난처럼 히히덕거리면서 대충 하자는 게 아니다. 놀이터의 아이들도 그러지 않고 조기축구회에서도 그러지 않는다. 승패가 걸린 이상 가위바위보를 해도 영혼을 끌어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즐기는 스포츠’란 무엇인가. 이 말은, 감각적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스우파>의 댄서들이 증명하였듯이, 해당 종목의 규칙과 미학과 목표를 최고의 수준으로 도달해 가는 여정이 기본이다. 이 여정에 수많은 정보와 지식과 가치와 미학이 바탕이 된다. 그래야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게 되고 몰두하게 된다. 이른바 ‘몰입의 즐거움’은 이런 전제에서 비롯된다. 지금 우리 스포츠계가 학생 선수들에게 ‘몰입의 즐거움’이 가능한 체계적인 교육과 안전한 훈련과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가.

같은 맥락에서, 그것을 수행하는 환경은 안전한가, 이 점 또한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아간다. 맥락 없는 행위는 없다. ‘즐기는 스포츠’가 ‘이빨 보이면서 설렁설렁’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도의 수련으로 드높은 성취를 이룬다는 식의 막연한 상태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즐기는 스포츠’는, 발전주의 시스템의 균열을 일으키고 여러 사회적 약속이 부도나고 그리하여 경쟁의 사다리만이 눈앞에 놓여 있는, 당장의 사회적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첫 번째 고려 사항은 인권보호와 안전보장이다. 학생 선수들의 신체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 그리고 각종 공포와 위압적 상황의 극복이 필요하다. 이에 기반하여 동기유발이 이뤄지고 그것을 너끈히 수행했을 때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단 하나밖에 없는 사다리, 특기자가 되고 프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거의 유일무이한 사다리, 그 경쟁에서 패하거나 낙오하면 곧장 추락하고 마는 극심한 불안의 상황은, 위험하다. 단순히 힘들고 고된 정도가 아니라 훈련이 두렵고 생활이 불안한 상태는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미비한 현재의 상태에서는 악으로 깡으로 하는 ‘승부근성’도 필요악이고 높은 수준에 이르러 희열을 느낀다는 식의 ‘즐기는 스포츠’도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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