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속 눈웃음의 ‘마법’

2021.12.15 03:00 입력 2021.12.15 03:01 수정

언젠가 불친절한 베를린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여행자로 다닐 때는 거의 느끼지 못하다가 살면서 깨달은 점이었다. 베를린에 사는 친구들도 특히 독일 관공서에서 겪는 불친절함과 무시에 힘들어했고, 일상 공간인 슈퍼마켓이나 꽃집에서도 종종 겪곤 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영수증을 집어 던지듯이 준다거나 시종 독일어로만 일관하는 고집 센 사람들. 처음엔 아시아인이라고 저러는 건가 하고 욱했다가, 다른 독일인에게도 똑같이 영수증을 획 집어 던지는 걸 보고 왠지 안심했던 기억. 베를린은 남들이 뭘 하든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쿨한 도시인데, 뭐랄까 사람들이 너무 신경을 안 쓰니까 가끔은 이 도시에서 유령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베를리너 특유의 무뚝뚝함과 무관심을 불친절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러던 며칠 전,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맞은편에서 서양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좁은 도로의 신호등 앞이라 그녀의 표정이 잘 보였다. 동양인인 나는 어딜 가나 한번 더 눈총을 받으므로 이번에도 그러려니 여겼다. 대신 나는 그녀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눈웃음을 지으며 옷깃을 여몄다. 그러자 그녀는 “맞아, 오늘 진짜 춥지?” 하는 몸짓을 해 보이며 나를 보고 웃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런 큰 리액션을 하는 사람을, 베를린에서 특히 지나가는 거리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먼저 당황을 했는데, 동시에 속에서 뭔가 뜨끈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그녀의 리액션에 용기를 얻어 더 큰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그 사소하고 짧은 순간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이게 그렇게 감동받을 일이야?’ 생각하면서도 그 여운이 하루 종일 갔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후부터 낯선 누군가와 말을 할 때면 눈웃음을 지으려 애쓴다. 웃는 입 모양을 보일 수 없으니 더 깊게 눈웃음을 지으려 노력한다. 내 눈웃음을 보든 못 보든 일단 웃는다. 가끔은 ‘쟤가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만난다. 그래도 일단은 한다. 왜냐하면 무시하는 사람보다는 여전히 웃음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신기하게 그 미소를 느끼고 같이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 무뚝뚝한 도시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다들 친절의 마법에라도 걸린 걸까? 아니면 팬데믹을 겪으며 변한 걸까?

록다운과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변했다. 어떤 면에서는 약해지고 콧대 세우던 힘도 빠졌다. 나부터도 그렇다.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여행을 하고 사람과 공감하는 일이 더 이상 당연한 일상이 아니다 보니 더 외롭고 더 간절하다. 비대면의 상황이 늘어날수록 사람과의 만남이 소중하고 소통이 그립다.

이런 시대를 겪다 보니 사소한 만남에도 더 반갑고 친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막연한 짐작은 아니라 생각한다. 우버에 두고 내린 줄도 몰랐던 지갑을 한 시간 뒤에 기사가 다시 들고 와서 찾아주는 친절이 지인에게 일어난 걸 보면. “베를린에서는 원래 경찰서에 신고해도 절대 못 찾는 거 알지!” 하며 모두가 기적이라 말한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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