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해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원’

외교란 아름다운 정원과도 같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서로 자태를 뽐내며 벌과 새들을 유혹하듯, 외교 역시 실은 주변국들로 하여금 한국을 매력적인 곳으로 여기도록 가꾸고 알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임기 5개월 남겨놓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원은 초라하다. 결실은 찾기 어렵고, 잡초(레토릭)만 무성하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4년8개월 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국회에서 “우리가 주도하여 ‘북한의 선 행동론’ 대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동시 행동을 이끌어내겠다. ‘중국 역할론’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을 실천적 전략으로 삼아 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한다. 우리의 주도로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한반도 비핵평화구상’을 호기스럽게 발표했다. 그러나 취임 4개월 만에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정은 집권 기간에만 이뤄진 네 차례 핵실험 중 마지막이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사드 배치에 반대했던 문 대통령은 취임 후 5개월이 지나 입장문 형태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어진 미사일 실험 발사로 입장을 바꾼 셈이다. 내심 사드 배치 철회를 기대했던 중국으로서는 배신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한·미동맹의 무게가 한·중관계의 무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던 중국발 사드 보복의 여진은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대중전략의 부실이 자초한 씁쓸한 풍경이자, 외교정원이 쑥대밭이 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잠시나마 외교정원을 화려하게 꽃피운 시절이 있기는 했다. 3년 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파견 용의를 신년사에서 밝히면서 이후 전개된 남·북·미 관계는 문재인 외교정원을 화려하게 수놓은 시기였다. 북·미 정상이 최초로 만나고, 미국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기록에 남을 이벤트도 있었다. 북한 비핵화가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고양되기도 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센토사 회담은 성공했고, 베트남 하노이 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회담 실패의 자세한 내막은 훗날 밝혀지겠지만 나는 북·미회담 실패의 주된 원인을 문재인 정부가 낙관적 전망을 한 탓에 도널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청문회 변수를 놓쳐 결과적으로 정보실패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후 외교정원은 사실상 방치 상태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미쳤겠지만 주인도, 정원사도 모두 시들 대로 시든 꽃들을 가꾸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다. 논의 중인 종전선언은 생화(生花)만 있어야 할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조잡한 조화(造花)다.

돌이켜보면 외교정원 내 돋보이는 유일한 꽃은 미사일 지침 종료였다. 올해 6월 문 대통령은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합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한·미 방위비 협정 타결과 더불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입니다”라고 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2주 전 페이스북에 “미사일 탄두중량 해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간절함에 울다가 눈물이 수첩에 떨어지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것뿐이다.

겨울을 예감한 나뭇잎들이 서둘러 떨어져 내리듯, 정권의 말기를 동물적으로 체득한 이들이 눈길을 두는 곳이 황폐한 정원일 리가 만무하다. 삽과 호미는 녹슨 채 한 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며, 제초제가 담긴 통은 어디엔가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소설 <파친코>에서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했듯이, 문재인 정부가 외교정원을 망쳐놓기는 했어도 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정원에 새로운 꽃들이 피고 새와 벌들이 날아와 대한민국의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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