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난 뒤에 오는 것들

2021.12.30 03:00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2021년이 가고 2022년이 온다. 내년이 오면 올해는 곧장 헌 해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투적으로 사용되곤 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에 이렇게 부합하는 해가 또 있었을까. 코로나19와 두 번째 보내는 해였지만 익숙해진 것은 별로 없었다. 마스크는 여전히 갑갑했고 연일 속보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생활을 넘어 생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하려고 했던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매번 체념이 뒤따라왔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체념이 반복되거나 길어지면 무기력해진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바로 ‘일’인 해였다. 일에서 그치지 않고 ‘탈’을 낳았다. 경제적인 탈, 신체적인 탈, 그리고 어떤 기대도 갖지 않게 되는 심리적인 탈. 별 탈 없이 사는 게 목표였던 이들은 탈이 나서 매일매일 다사다난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를 물을 여유는커녕, 나를 챙기고 돌보는 일에도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나와 상대의 일의 경중을 따지고 탈이 난 횟수를 세면 안 될 것이다. 연말에 불행 콘테스트만큼 슬픈 일도 없다.

해가 갈 때마다 나는 올 것을 생각했다. 국면의 전환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을 때, 해가 바뀌는 것은 절로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해에 결심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는 등 떠밀려 했던 일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결과가 늘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단단히 실패를 맛본 뒤에야 그 일과 내가 걸맞지 않음을 깨닫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새해에는 코로나19 국면에 봉착했던 우리가 위드 코로나 국면에 안전하게 접어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올 것을 생각하는 일은 희망하는 일인 셈이다.

연인은 헤어진 뒤에 ‘홀로’의 상태가 된다. 둘에서 하나를 빼도 하나가 남는다. 하나는 남은 하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자기 자신을 직면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한바탕 싸우고 난 후에는 그간 쌓여왔던 울화가 해소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은 회한으로 돌아온다. 가기만 하는 것은 없다. 홀가분한 기분 끝에 찾아오는 미련처럼, 하나의 감정이 지나가면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메운다. 두 감정이 섞여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한 사람이 간다고 해서 사연까지 영영 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함께했던 시공간이 뒤얽힌 기억은 언제고 다시 찾아온다.

유품정리를 하는 김새별과 특수청소를 하는 전애원이 함께 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청림출판, 2020)을 읽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엄마를 생각하며 혼자 우는 아이, 그 뒤에 서서 그들은 이렇게 쓴다.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 울어야 할까. 언제까지 그 슬픔과 고통을 숨죽여 삼켜야 할까.” 숨죽인 채 보낸 시간이 숨통을 틔워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와도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것을.” 그들이 죽음에서 삶을 보았듯, 우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만 한다.

가고 난 뒤에 오는 것들이 있다. 헤어진 이의 뒷모습이 콩알만 해질 때까지 바라보던 사람은 이내 마음을 접는다. 제 갈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못했을지라도 발길은 이미 상대와 반대편으로 향해 있다. 묵은 것이 해소되는 데는 묵은 만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 안에 맺히고 영글고 또다시 묵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사이 미련이 기대가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세계가 넓고 크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가는 것들과 헤어지고 오는 것들과 만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좁고 작다는 것을. 가고 난 뒤에 오는 것들이 있다. 가고 난 뒤에야 오는 것들이 있다. 나는 기다린다,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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