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의 뿔처럼 가라

2022.02.10 03:00 입력 2022.02.10 03:02 수정

안철수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오래 이어지고 있는 그의 정치적 부진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흐뭇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지치지 않는 정치적 도전을 보노라면 그렇다. 그가 정치사회에 들어와서 겪은 조롱과 모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잘 삼키며 견디고 있다. ‘삼키다(swallow)’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그는 거듭되는 좌절을 속으로 삭이며, 끈질긴 노력으로, 여러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정치 영역에서도 보려고 한다. 그 점은 훌륭하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

그는 지금도 그렇다. 여론이 그네타기를 하고 있는데도 늠름하다. 한 자리 숫자로 시작한 지지율이 두 자리로 올랐다가 다시 급하향 추세여도 그는 개의치 않아 보인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돋보이지 않더라는 평가를 들어도 그는 덤덤하다. 정치사회에 처음 걸어들어올 때 모습 그대로 터벅터벅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최근 안철수가 직면한 정치적 과제는 단일화다. 거대양당의 후보들이 안철수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번 선거의 남은 변수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안철수와 손잡기 위한 그럴싸한 명분과 이익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안철수가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런 제안에 혹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가 정치사회에 들어와 걸머진 책무는 거대양당의 어느 한 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양당제의 한계와 양대 진영정치의 폐해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와 단순 다수제, 그리고 이와 결합한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를 이분법적 대결 구조로 만들었고 그것 때문에 질곡에 빠진 정치적 현실을 바꾸라는 것이 그가 받은 정명(定命)이다. 정치판을 바꾸라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다.

그가 그동안 이 임무를 잘 수행했는지는 물론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때 새로운 정치의 총아이기도 했으나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 그는 거대양당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그의 종횡무진을 뼈아프다고 하는 까닭은, 이 과정에서 그는 “도대체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커녕 점점 더 말하기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왼쪽으로 조금 위치를 옮기면 운동권 이중대라는 놀림을 받았고 오른쪽으로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뗄라치면 적폐의 옹호자라는 힐난을 받았다. 이런 딜레마는 거대양당의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려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 진영 사이에서 정확히 가운데를 자로 잰 후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게 위치를 정했다면 기회주의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거대양당 사이에서 정치적 위치를 찾는다면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묘수는 없다. 두 진영의 사이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해법이었는데 그의 정치적 실험은 이에 관한 설명 언어와 현실적 힘을 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다당제 의회가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말미에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는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나아가게 한 다당제 의회의 역사적 성과였으며 그 중심에 안철수의 도반들이 있었다.

안철수 앞에는 이런 과업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놓여 있다.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왜곡시켜 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듬어서 정말로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이분법적 정치 지형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내걸었던 새 정치의 최소강령이다.

그렇게 하자면 안철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거대양당에 몸을 의지하는 실험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면 지금껏 좌충우돌할 때마다 쏟아졌던 조롱이 그에게 다시 한번 퍼부어질 것이 분명하다. 거대양당 독재가 지속되고 있는 이 갑갑한 정치판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안철수는 달콤한 말에 흔들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가던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정치적 다양성의 시대를 여는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는 물론 그와 국민의당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서도 좋다. 그렇게 버티며 가다 보면 대선 이후 있을 지방선거와 다음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