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차리기

2022.02.11 03:00 입력 2022.02.11 03:04 수정

다음주 월요일이 20대 대선 후보자 등록 마감일이다. 그런데 십수년 전에 방영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의 음식 경연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잘 차려진 밥상 중에서 하나를 임금이 골라서 승자를 정하는 내용이었다. 선거도 이런 밥상 차리기와 차려진 밥상 중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선택을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그런데 음식 경연에서 임금이 차려진 밥상 모두에 만족을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승자는 없고, 경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큰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좋든 싫든 누군가를 뽑아야 한다. 뽑지 않겠다고, 다시 상을 차려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차려진 밥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좋은 밥상 차리기를 담보할 수 있는 과정이 가능하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이번 대선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이후에 발전해 오던 것 같던 한국 민주주의가 실상 큰 위기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1987년 이후 더불어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 양당 체제가 자리를 잡았고,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진보 그리고 국민의힘 계열은 보수 정당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두 정당 모두 친재벌·기득권 정당일 뿐이고, 오직 북한에 대한 정책이 협력적 공생과 적대적 공생으로 다를 뿐이었다. 한때 경제민주화로 포장도 했던 국민의힘 계열의 정체성은 최순실-박근혜-이재용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고, 대통령 탄핵 이후에 출범한 문재인 정권에 의해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친재벌·반노동이라는 민낯이 여실히 나타났다.

이번 대선이 우리 미래에 대한 정책 대결보다는 역대급 네거티브와 스캔들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개인과 가족 관련 구설과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두 기성 정당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엄밀히 진단하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정치 밥상 차리기’에서 기인한다.

MIT 대학의 슈나이더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계층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중남미국가들은 공고한 경제 기득권과 정치권력의 사악한 보완성에 빠져서,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사회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가격경쟁력과 공정혁신에 의존하는 중화학공업 산업 중심으로 거대한 기업집단인 재벌체제가 형성되었고, 재벌은 여전히 총수일가의 세습과 기업집단의 유지 및 확대라는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재벌의 이해는 ‘친환경·혁신성장·포용사회’로의 전환과 상충된다.

따라서 친재벌·기득권 양당은 제조업 경쟁력 위기, 탄소중립과 디지털전환을 위한 산업 전환, 구조적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에는 눈을 감고, 추상적 담론과 이른바 ‘체감할 수 있는’ 작은 공약 경쟁에만 매몰된다. 친재벌·기득권 양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결사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치 밥상 차리기는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이번 대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론 조사에서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가 내 주위에는 없다. 그렇지만 뽑아서는 안 되는 후보를 가리키며 그 이유를 열거하는 사람들은 쉽게 만난다. 그러나 A가 잘못이라는 것이 곧 B가 더 낫다는 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

선거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좋든 싫든 누군가를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조금이라도 더 국민 다수의 이익과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밥상 차리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뽑지 않겠다고 다시 상을 차려오라고 할 수는 없으나, 새로운 밥상 차리기를 위한 정치개혁에 더 도움이 될 후보를 선택할 수는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대선 이후에 개혁적인 정치인, 지식인, 시민들이 연대해서 새로운 정치 밥상 차리기를 시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렇게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차려진 밥상을 보며 한숨만 짓는 자학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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