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위기의 전조일까

2022.02.10 03:00 입력 2022.02.10 03:05 수정

지난 연말에 이어 새해 들어서도 무역수지 적자가 더욱 늘어나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12월 4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적자 규모가 48억9000만달러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1월 무역적자액이 사상 최고인 것은 물론 2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소 개방경제국가인 우리나라의 특성에 더해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급속한 통화긴축 전환 등과 같은 대외 역풍을 감안하면, 또 다른 위기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견해들도 무작정 간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과거에도 우리나라는 위기 때마다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경제 펀더멘털의 취약성을 드러낸 바 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8년 연속 큰 폭의 적자가 이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인 2008년에는 연간 133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미 적자 기조가 고착화된 재정수지와 더불어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올 들어 1200원선을 넘나들며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고, 국내 달러 유동성의 버팀목인 외환보유액조차도 3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가뜩이나 위드 코로나 시대 국내 경제의 취약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무역적자 추세가 전면화되면서 새로운 위기가 도래하는 걸까?

하지만 걱정부터 앞세우기 전에 우선 무역적자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오미크론 확산 사태로 1월 중 수출 증가세가 전년 대비 15.2%로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11개월째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수입은 35%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지만, 아무래도 56%나 상승한 원유 도입단가 등과 같이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영향이 크다. 아직 그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은 크지만, 산유국의 증산 가능성이나 단계적인 방역 완화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연간 무역적자를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게다가 최근의 수입 호조는 양호한 수출 흐름의 반증이기도 하다. 본래 수출 증가는 원자재나 중간재의 수입 증가를 수반하기 마련인데, 2018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국내 수출의 수입의존도는 36.1%에 이른다. 실제로 석유화학제품의 주원료인 납사는 수입이 1월 77%나 늘었고, 주로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해 역수입하는 메모리반도체도 29%나 증가했다. 또 국제 공급망 교란 여파로 국내 기업들 간에 생산 공정상 필수품목의 재고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수입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 활용되는 산화텅스텐이 135%, 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수산화리튬이 129% 증가한 것이 일례다.

여기서 무역수지 혹은 경상수지가 국내 저축(민간저축+정부저축)과 투자 간의 불균형에 따른 결과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 항등식에 따르면,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경상수지 흑자, 반대로 적으면 경상수지 적자가 초래된다. 정부저축, 즉 재정수지가 최근 적자를 지속하면서 국내 저축도 줄어드는 추세다. 아울러 가계나 기업의 민간저축도 코로나 이후 소비와 투자 회복 과정에서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대출 규제나 자산가격 조정으로 차입 축소 및 부채 상환이 이뤄지면, 실제로는 민간저축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또 국내의 빠른 노령화 추세는 민간저축 증대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경상적자 고착화를 운운하기는 쉽지 않은 대목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 경제의 불황형 무역·경상수지 흑자의 덫에 온통 신경이 곤두섰다. 적절한 투자처를 상실한 잉여자금(저축>투자)의 환류로 실물경제는 정체된 가운데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만 앙등했던 것이다. 이제 무역수지의 적자 반전으로 위기의식이 다시 환기되고 있지만, 펀더멘털 차원보다는 유가 급등이나 공급망 교란에 따른 일시적·잠정적인 적자의 성격이 강하다. 섣부른 위기론으로 불안을 키우기보다는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해 국내 경제의 취약성과 불균형을 정확히 진단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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