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구조 개편은 실종되고 마는가

2022.02.14 03:00 입력 2022.02.14 03:01 수정

대선 후보 토론이 두 차례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권력 구조 개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 개혁과 직접 관련 없는 주제들이어서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유 주제 등의 시간에서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후보들이 권력 구조 개편에 큰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권력 구조 개편은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할 즈음 단골 주제가 되다시피 했다. 지금도 언론이나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대선 후보들 주위에서 논의가 실종되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더 이상 실패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려면 권력 구조 개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재차 피력했고, 박병석 국회의장도 개헌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대선 토론에 참여한 네 후보의 입장은 공개된 발언이나 공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통합 정부를 내세우고, 윤석열 후보는 민정수석 폐지 등 청와대 개편을 통해 초법적 대통령과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후보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 총리제 및 책임 장관제를 주장하고, 심상정 후보는 다당제 책임 연정을 강조하며 청와대 권력 분산과 의회 중심 민주주의를 내걸었다. 네 후보의 공통점은 대통령 중심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의 주요 문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방점은 ‘제왕적’이라는 것에 집중된다. 과연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만 걷어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그나마 개혁의 정도로 순서를 매기자면 이재명 후보보다 윤석열 후보가 앞서가며, 윤석열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앞서간다. 심상정 후보는 권력 분산의 구체적 내용이 부족하지만 의회 중심주의를 강조해 권력 분산 주장을 뒷받침하는 반면, 안철수 후보는 국무회의 강화를 제안해 내각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제도가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폐해를 반세기 넘어 겪으면서 이미 익숙해져 버렸는가. 당선 가능성이 적은 후보가 지지율 제고를 위해 책임 총리제나 내각제를 언급할 뿐,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그 언급은 슬그머니 사라져 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주장들이 경쟁하고 타협하며 조정해가는 정치가 제도화된 질서다. 인종 문제와 주들 간 각축 등 국내 갈등이 심한 미국 같은 경우에 강력한 중앙 행정부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제왕적 권력이 아니라 삼권 분립이 엄격히 이루어진 형태로 말이다. 그 밖에 민주주의가 발전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내각제를 도입해 내각이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의회에 대해 책임지는 구조다.

‘제왕적’ 성격만을 걷어내 견강부회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 여의도 정치가 보여준 패거리 정치와 권위주의 행태로 인해 의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의회 중심 정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여의도 정치가 과연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국회의원 선출 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각제 도입은 대부분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와 맞물린다. 또한 국회의원의 임기를 제한하고 수를 늘려 그 권한을 축소하면서 대표의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국회에 대해 책임지는 내각이 구성된다면, 책임 정치가 구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양원 제도 도입 등 대표성을 높이는 다른 의회 개혁 방안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대선이라고 해서 대통령제와 관련된 논의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혁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지 않은 채 논의를 축소해 임시방편으로 피해 가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력 분산이 일정하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대통령제와 의회 제도의 근간이 유지된다면, 여소야대로 행정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교착상태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 그야말로 판을 갈아치우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이 국민에게 가장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때는 선거 시기다. 선거철에조차 이슈가 되지 못하는 개혁이 선거 후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더욱 작다. 오는 22일과 25일에 예정된 정치 분야 토론에서는 정치 개혁이 깊이 있게 논의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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