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은 결코 미담일 수 없다

2022.02.28 03:00 입력 2022.02.28 03:04 수정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치킨은 결코 미담일 수 없다

이 땅에 만연한 것 중 하나는 치킨이다. 치킨은 온갖 미담 속에 등장한다. 인자한 사장님의 선물처럼, 퇴근 후의 쾌락처럼, 고생에 대한 보상처럼 통용된다. 그것을 배달시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도처에 흔하다. 한국에서의 삶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매일 치킨을 마주치는 일상을 포함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가장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에서 자주 집계되는 검색어에 ‘치킨’이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치킨에 관해 과열된 분위기가 이 사회 전반에 흐른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닭고기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해온 와중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가 시작되면서 치킨 업계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배달 앱을 통한 치킨 주문이 대폭 늘어나서다. 이 변화로 인해 치킨집 사장님들의 형편이 나아졌을까? 혹은 육계농장 노동자들이 더욱 살기 좋아졌을까? 대체로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의 몸집만 거대해졌을 뿐이다. 수익 구조가 그렇게 돼있다. 하림과 마니커, 팜스토리 같은 커다란 닭 공급 회사들이 돈을 쓸어담고 프랜차이즈 본사와 플랫폼 기업이 유통 마진을 두둑이 챙기는 구조다. 치킨 소비량이 급증했어도 자영업자와 육계농장 노동자들의 사정은 개선되지 않았다. 한국일보의 기사 ‘치킨공화국의 속살’은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기획 취재 시리즈다. 한국의 닭 유통 구조를 속속들이 파헤친 뒤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해당 기사들에 의하면 2020년 기준 한국에는 2만8000개에 달하는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있는데, 이러한 치킨집들의 수익성은 꾸준히 악화돼 왔다. 갈수록 배달비 부담이 커진 데다가 본사에서 가맹점에 판매하는 재료 가격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닭은 물론 치킨집·양계장도 고통

가맹점은 본사로부터 닭고기, 기름, 파우더 등의 필수 재료를 의무적으로 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사는 엄청난 ‘차액 가맹금’을 챙긴다. 공급업체와 가맹점 사이에서 물류 마진을 붙인 결과다. 닭을 직접 키우는 노동자와 치킨을 직접 조리하는 가맹점주는 마진이 적을 수밖에 없다. 치킨을 열심히 먹을수록 대기업들의 배만 불려진다. 특히 폭리를 취한 기업은 bhc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관해 무혐의로 처분하며 면죄부를 준 상황이다.

인간동물 사이의 불균형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을 둘러싼 고통과 윤리 역시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치킨은 닭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치킨을 먹을 때 그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15만 마리의 닭이 고기로 쓰이기 위해 죽임 당한다. 2020년에는 한해 동안 10억여 마리의 닭이 도살되었는데 현재는 그 수가 더욱 증가했을 것이다. 도살의 거대한 규모뿐 아니라 방식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병아리가 치킨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몹시 끔찍하다. 밀집 공간에서 살만 찌워지다가 35일가량을 살고 치킨용 고기가 되는 생애다. 홍은전 작가는 2020년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거꾸로 매달린 병아리들이 레일을 따라 끝도 없이 이동하는 도살장의 풍경을 묘사하며 이렇게 썼다.

“현대의 가축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죽는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어린 새의 발을 기계에 걸어주는 일뿐이다. 그다음 일은 기계가 한다. 레일이 끓는 물을 통과하고 이어서 칼날 사이를 지나가면 머리 잘린 병아리들이 도미노처럼 끝도 없이 착착착착 그 모습을 드러낸다.”

타자를 죽이지 않고 잘 살 수 없나

치킨은 그야말로 고통의 결과다. 닭에게는 학살의 반복이며 자영업자와 육계농장에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산업이다. 치킨을 둘러싼 미담 앞에서 몸도 마음도 동하지 않게 된 이유다.

이 땅에 만연한 치킨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치킨을 먹을 때마다 어떤 세계가 공고해지고 어떤 세계가 취약해진다. 먹으면 먹을수록 닭이 수난당하는 구조 또한 계속된다. 그것은 명백히 죽음의 반복이다. 이 시스템에 일조하지 않도록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육식을 멈추거나 줄이거나 보류해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정체가 무엇인지 인지하며 메뉴를 결정할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되도록이면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자. 타자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꿈꾼다.

유통 사슬 끝에 있는 노동자와 먹이사슬 끝에 있는 동물의 고통의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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