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거버넌스의 안정성

2022.04.02 03:00 입력 2022.04.02 03:01 수정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데다 개인이 하기에는 버거워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일이 있다. 대부분 공익적 목적에서 수행되는 일이 그렇고, 국제개발협력이 대표적 분야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공적개발원조(ODA)라는 단어로 더 잘 알려진 국제개발협력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복지 증진을 목표로 제공하는 원조를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 국가는 자금 지원이나 기술 협력 같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국제개발협력을 수행하는 다른 나라들의 공공기관 이름은 ‘원조’라는 뜻의 ‘Aid’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USAID), 캐나다(CIDA), 호주(AusAID)가 그런 예다. 한편 독일은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설계한 시점부터 ‘수혜국 자립기반 조성을 지원하는 실무 협력’을 위주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독일의 관련 공공기관 이름으로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한다는 의미의 ‘원조’가 아니라 기술이나 지식을 공유하여 협력한다는 뜻의 ‘개발협력’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독일에서도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들에 밀려나곤 한다. 그런데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끈 지난 정부에서, 독일은 2020년 국민총소득(GNI)의 0.73%를 차지하는 284억달러를 ODA 예산으로 지출하며 유엔 목표치인 ODA/GNI 0.7%에 도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에 도달한 국가는 스웨덴·노르웨이·룩셈부르크·덴마크 정도에 이르고, 회원국 평균은 0.32% 정도다.

그런데 독일의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발전해온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원금이 중요한 목표치에 도달했다는 점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국가 정책이 안정화되어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독일은 1960년대 초반에 수립한 개발협력의 목표와 큰 방향이 변하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이었던 마셜플랜을 통해 전쟁 후 사회를 재건했던 독일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들에 자금 원조뿐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쓰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했다. 물론 독일 나름대로 비교우위를 갖고 있던 기술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독일은 곧 기술 분야를 위주로 국제개발협력의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개발협력 정책의 기본 방향인 ‘기술 협력’을 모든 프로젝트의 기반으로 삼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 어젠다에 맞춰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제개발협력 부처인 연방경제협력개발부(BMZ)의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친환경’으로, 작년 말 새로 임명된 BMZ의 장관 스벤야 슐체는 환경부 장관을 지냈으며, 장관 교체 후에 이 테마는 국가 어젠다와 밀접히 연관되어 개발협력의 중요한 주제로 활약하고 있다.

그 결과 독일은 OECD 국제개발위원회(DAC)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개발협력 전담 부처가 남아 있는 국가다. 또한 프로젝트의 방향이 시대 흐름을 따라 변화하고 상황에 따라 개발협력 프로젝트의 수와 지원 금액이 줄거나 늘었음에도, 애초에 세워둔 개발협력의 목적과 방향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게 되었다. 오랫동안 지켜온 시스템의 안정성까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부처와 수행기관 모두가 힘쓴 덕분이다.

지난해 DAC가 발표한 동료평가는 독일 국제개발협력체제의 안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10여년 전 지적받았던 실무 기관 분절화와 같은 문제가 거의 해소됐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더 나아가 독일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비치기까지 했다. 이 동료평가는 독일이 유럽연합(EU)의 주요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을 강력하게 어필하여, 독일은 EU의 국제개발협력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 거버넌스의 안정성은 탄탄한 장기 전략, 유연한 수행 능력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분야에서 국가 시스템이 안정화되어가는 과정을 지난 60여년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높은 점수의 동료평가를 받기까지 독일도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야 했다. 그럼에도 독일형 개발협력체제를 일구는 일에 모든 주체가 합심했다. 한 분야에 있어 국가의 맞춤형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당장의 성과에 현혹되지 않고 꿋꿋하게 할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그것은 눈에 띄는 것 이상의 성과를 가져다주기 마련인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