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정당을 기다리며

2022.04.05 03:00 입력 2022.04.05 03:03 수정

그렇게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질펀한 잔치가 지나가고 난 뒤의 숙취처럼 우리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새 대통령이 선서를 마친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장(磁場)에서 한발도 걸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조차 하기 전 6월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는 불현듯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누누이 운위되었던 것이지만, 지방선거에서조차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대한민국 정치구조의 근본문제를 다시금 돌이켜 보게 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대선에서 청년문제가 중심 의제인 것처럼 다루어졌지만, 그 어느 후보도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청년 문제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구절벽 문제가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여야 없이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방의 저출생 문제, 아니 지방 소멸이라는 사실을 어느 후보도 말하지 않았다. 젠더 문제가 선거의 희비를 가른 결정요인이었던 것처럼 평론가들의 입질이 끝없이 오가지만, 정작 젠더 간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살펴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대선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들을 빨아들였고, 거대 양당의 지도부는 대선 기간 중 지방선거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대선이 끝난 이후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방선거 또한 마치 대선처럼, 혹은 총선처럼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 ‘주자급’들이 ‘디딤돌’이 될 단체장직들을 노릴 것이며, 현직 의원이나 지역위원장 및 당협위원장들은 ‘자신들의 사람들’을 공천하는 데 사력을 다할 것이다. 지방선거를 중앙선거처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방정치의 비극은 사실 우리의 정당법이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제3조)”고 선언한 순간 시작되었다. 각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을 지닌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만(17조, 18조) 선관위에 정당으로 등록되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한국의 모든 정당들은 서울에 중앙당을 둔 전국정당만이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이들만이 후보자들을 공천하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 고유한 의제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농어촌 지역에서는 농민과 지자체, 그리고 일반 주민들이 어떤 형태로든 상생하는 지역경제를 가꿔갈 아이디어와 정책들이 경합할 것이며, 도시는 도시대로 아파트 가격과 지역 화폐 등을 위시한 로컬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산적해 있지 않겠는가. 관악구의 구정(區政)이 서울대학교와 관악산과 고시촌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처럼, 대한민국 220여곳의 기초단위들 모두 각자의 다양성과 특수성 위에서,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선의 합의점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방선거여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 지방정치의 비극은 이러한 220여개의 구체적 가능성들이 실질적으로는 서울에 중앙당을 둔 2개 정당의 동의 없이는 아예 의제로 검토될 수조차 없다는 데 있다. 도시 빈곤 노인 돌봄 정당이나 경북 의성군의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정당, 경기 안산시 시화호 생태환경 조성 정당이나 고시촌 부활을 꿈꾸는 관악청년당 같은 조직은 애초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이들의 구체적 우려나 걱정은 양당의 전국적 의제 중의 하나로 ‘수렴’되었다가 씹어 뱉어져 아주 운이 좋다면 공천된 후보자의 의제로 잠시 공보물에 오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당법의 “수도 소재 중앙당”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후 1962년 제정된 정당법에 연원하며, 이듬해 치러진 5대 대선이나 6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후보의 출마조차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후보와 정당의 ‘난립’을 금지하려는 의도였다. 꼭 60년이 지난 지금, 정당에 대한 군사정부의 국가주의적 규정이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거대 양당의 패권 유지에 그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은 보호한다면서 지방정치까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가로 우리의 지방정치는 중앙을 향한 ‘민원정치’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수도권이 지방으로부터 사람과 자본을, 젊음과 꿈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의 정치구조는 지방이 생존할 최소한의 정치적 활력의 공간조차 남겨놓지 않았다. 226개의 기초단체에서부터, 아니 3500여개의 읍·면·동에서부터 자치를 고민하는 동네정당들이 건강한 정치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 첫걸음은 정당법 개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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