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죽음 앞에서…다시 겸손해집니다”

2024.06.27 20:25

20년 차 간호사의 ‘변신’

경기남부경찰청 현윤정 검시조사관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현윤정 검시조사관이 지난 24일 부천 오정경찰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현윤정 검시조사관이 지난 24일 부천 오정경찰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변사 사건 사인 1차로 파악하는 일
범죄 가능성 살펴야 해 항상 긴장
AI 기술 발전해도 검시는 사람 몫
죽음의 이유 밝히는 일 참여 보람

“동료 검시조사관들이 출동했어요.”

지난 24일 부천 오정경찰서에서 만난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현윤정 검시조사관(44)은 이날 오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공장에서 난 화재가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현 검시조사관은 사고 현장에 배치되진 않았지만, 언제 출동 지령이 떨어질지 몰라 휴대전화를 계속 확인했다.

검시조사관은 원인이 분명치 않은 사망(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는 전문 인력이다. 간호사나 임상병리사 등의 자격은 필수다. 경찰에 속한 보건의료직 공무원으로 여러 죽음을 살펴보는 과학수사관에 속한다.

현 검시조사관은 약 20년 동안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적성에 맞았지만,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법의학대학원에 진학한 뒤 2021년 12월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첫 변사 사건 검시 현장을 또렷이 기억했다. 실습생 시절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홀로 목숨을 끊은 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겨울이라 추위 탓인지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변사 사건 현장의 죽음은 의료기관에서 본 것과 달랐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갑작스러워도 어느 정도는 예상된다. 대부분 가족이나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는다.

“간호사로 일하며 죽음에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현장에 가면 제 몫을 바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변사 사건을 보니 이전까지 자만했던 것 같았어요.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검시조사관은 변사자의 겉모습부터 주변의 상황까지 꼼꼼히 살핀다. 주변에 약이 있거나 수술 자국이 있다면 의료 지식을 활용해 어떤 질병을 앓았을지 추정하기도 한다. 검시조사관은 사인을 1차로 파악하는 전문인력으로 범죄 의혹을 밝혀야 하므로 항상 긴장해야 한다.

“자살 사건으로 보이는 현장에서 타살 혐의점을 찾아내는 일도 있습니다. 변사 사건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검시조사관의 역할이죠.”

검시조사관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다. 병원에서 하루라도 더 삶을 연장하려는 이들과 대비된다. 현 검시조사관이 마주한 자살이 모두 철저한 준비 끝에 이뤄진 건 아니었다. 오늘내일 먹을 생수를 사거나 옷이나 운동화를 주문해둔 이들도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일이에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하루하루 삶의 본질에 집중하고 충실하며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해요.”

현 검시조사관은 지난 5월24일 경찰인재개발원 안병하홀에서 열린 한국CSI학회 춘계학술대회에 발표자로 나섰다. 노인 변사 사건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발표했다. 고령 사망자 목에 자연스럽게 난 주름과 타살의 흔적을 비교하는 등 사례 비교를 통해 검시조사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 검시조사관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해도 검시조사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 같아요. 현장에서 직접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

그는 전문 과학수사관으로서 검시조사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일에 참여하는 가치 있는 직업이에요. 전국의 검시조사관들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과학수사의 하나인 검시 분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노력해야죠.” 현재 경찰 검시조사관은 총 2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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