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으로 거듭나는 ‘문화재’, 행정도 거듭나길

2022.04.14 03:00 입력 2022.04.14 03:03 수정

‘천마총 금관’ 같은 신라 금관의 값은 얼마나 될까? ‘백제 금동대향로’나 ‘세한도’ 등 문화재 가격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국보·보물처럼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는 더 그렇다. 프랑스의 ‘모나리자’나 영국에 있는 ‘로제타 스톤’, 이집트의 ‘투탕카멘 황금마스크’ 같은 외국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내외적으로 공인가는 없다. 공개·비공개 거래가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보험료 등으로 추정가를 내놓는다.

도재기 논설위원

도재기 논설위원

흔히 문화재는 “무가지보”(無價之寶)로 불린다. 값을 매기지 못할 만큼 귀중한 보물이란 뜻이다. 그 말속에는 한 나라·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재가 돈으로 환산되는 불편함이 깔려 있다. 그래서 ‘문화재’란 법률·행정 용어를 ‘유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문화재계 내부에서 진작부터 나왔다. 문화재(文化財)란 명칭이 문화재를 은연중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재화나 그저 값나가는 골동품쯤으로 여겨지게 하기 때문이다. ‘유산’으로 개칭해 역사성·정신성의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고 포용성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문화재란 용어는 한국과 일본 정도만 사용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때 일본의 관련 법령을 상당부분 따랐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 대다수 국가들은 문화‘재’(Cultural assets)’보다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을 사용한다. 1999년 문화재관리국이 승격될 때도 기관 명칭을 놓고 ‘문화재청’ ‘문화유산청’이 부딪치기도 했다.

마침내 ‘문화재’ 명칭이 ‘유산’으로, 여러 유산을 통칭해선 ‘국가유산’으로 바뀐다. 문화재위원회가 개선안을 내놨고,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을 대신할 ‘국가유산기본법’ 등 관련 법률의 제·개정과 행정 절차에 들어간다고 최근 밝혔다.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이 달라지고, 문화재 개념과 정의도 수정·보완된다. 문화재 분류체계도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으로 변한다.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 지정 기준의 확장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명칭 변경과 분류체계 개선은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0년 만의 대대적 변화다. 문화재의 의미는 물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생각하는 틀의 대전환이다. 공자의 정명(正名)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인이나 동네, 회사명, 나아가 정부 부처가 이름을 신중하게 바꾸는 이유다. 지난 60년 동안 국내외 시대상황과 문화재를 다루는 정책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용어의 변경, 분류체계 개선에 따라 문화재청의 행정도 새 출발선에 섰다. 해묵은 숙제를 끝낸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보존과 관리, 학제를 넘나드는 학술연구의 활성화는 기본이다. 그 탄탄한 기본 위에서 문화재의 활용성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인공지능(AI) 일상생활화 등 시대변화의 적극적 수용으로 문화재가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다. 문화재 향유 기회의 확대다. 문화재의 다양한 활용은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다. 문화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길이다. K팝 등 대중문화 중심의 세계적 한류 흐름의 내실화와 지속성, 한 단계 발전에도 문화재는 이바지할 수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들의 현지 활용도 향상도 중요하다. 그동안 1만여건의 해외 문화재가 환수됐다. 하지만 아직 해외 유출 문화재는 세계 25개국 21만4000여점에 이른다. 국제법상, 정치·외교적 현실에 따라 환수가 힘든 문화재는 지금의 자리에서 그 가치가 더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게 효율적이다.

문화재는 수도권과 지방, 도농 간 경제적·문화적 격차 심화에 따른 불균형의 개선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화시설들이야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됐지만 전국 각 지역에는 저마다 특색을 지닌 다양한 문화재들이 흩어져 있다. 지역 문화재를 통해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지역민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관광자원 시각에 매몰돼 근거도 없이 무리하게 유적·유물을 복원하는 일은 기존 사례에서 보듯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한 황룡사지·미륵사지 복원 등도 그중 하나다.

이번 명칭과 분류체계의 변경·개선은 지난 문화재 행정을 되돌아보고 새 각오를 다질 때 그 의미가 더 빛난다. 명칭 변경에 따른 안내판 교체 등에 최대 64억원이 든다는 추산이다. 예산이 아깝지 않도록 문화재청의 행정도 명실상부하게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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