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상담소

2022.04.30 03:00 입력 2022.04.30 03:01 수정

요즘 게스트의 개인적 문제를 상담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게스트가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문제를 가져와 패널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전문 상담사와 함께 풀어내기도 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나 영향력이 있는 일반인들도,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도 방송에 나와 자신의 사생활을 숨김없이 공개한다. 사생활 공개 차원을 넘어 자신의 내밀한 가정사와 성장배경, 생활습관과 사고방식까지 낱낱이 알려준다. 마치 상담센터를 찾은 내담자의 역할을 기꺼이 도맡는 양상이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나도 그 프로그램들을 즐겨 본다.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하고 그들을 지지대 삼아 자기 성찰도 하고, 우리가 사실 비슷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몇 년 전 치유와 힐링이, 그보다 한참 전에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사회적 화두였던 사실을 떠올려볼 때, 지금의 상담 열기도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담론의 주체가 시대에 맞게 대중 교화에서 개인 상담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그 면면이 조금 더 내밀해지기는 했다.

대한민국 갈등 지수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가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사회적 갈등 지수는 진영, 젠더, 세대 이슈 순으로 높다. 그런데 갈등의 절대적 지수가 높아지는 것만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갈등 이슈들이 서로 엇물리면서 갈등 주체들이 갈등을 풀어낼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새로운 사건에 다시 봉착하며 갈등이 새로운 줄기를 계속 뻗어나가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느끼는 사회에 대한 분노 지수도 높고,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사회적 갈등은 당연히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불평등과 분노에 대항하기 힘든 개인들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결과로 높은 자살률을 꼽고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 비교 시 한국은 회원국 평균 11명을 훨씬 웃도는 24명으로, 자살률의 절대적 수치가 높은 것도 물론 문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 국민의 모든 세대에서 자살률이 사망 원인의 무척 높은 순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순위 1위이고,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 원인 순위 2순위다. 우리나라는 개개인의 분노와 좌절의 정도도 월등히 높고, 갈등에 서로 예민한 데다가, 갈등에 대한 피로도도 높다. 그 결과 한쪽에서는 분노와 갈등을 부추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친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이라는 단어는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을 쓴다. 칡은 덩굴을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는 덩굴을 오른쪽으로 감는데, 이 두 개체의 덩굴이 워낙 질겨 서로 얽히기라도 하면 잘라내기 힘들어지는 모습에서 착안된 것이다. 하물며 서로 다른 방식의 생각을 굳건히 지켜온 개인이나 집단 간의 충돌이야 얼마나 잘라내기 힘든 것일까. 얽히고설킨 문제는 당연히 기대만큼 서둘러 풀리지 않고, 우리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성급히 분노하며 답답해한다.

갈등이 아주 없는 사회도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갈등은 제대로 해소하면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갈등론자들의 꾸준한 테제였다. 다만 갈등 해소의 노력은 구조나 개인 중 어느 한쪽 방향에서만 일어나서는 효과가 없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이 계속되고, 미시적 차원에서는 개인들의 신뢰와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갈등 해결의 핵심 요소이다.

최근 계속되는 상담 프로그램의 유행에는 개인이 겪는 내면적 갈등을 푸는 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염원도 담겨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내담자가 된 주인공을 앉혀놓고 개인사를 들으며 문제점을 낱낱이 밝히는, 어떻게 보면 개인의 삶 전체를 드러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만들고, 패널과 시청자들에게는 그의 인생 전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담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간에게 상대를 이해하려는 본능, 동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내가 아닌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의 힘, 나와 다른 생각을 기꺼이 들어주려는 연대의 마음. 아마 우리는 이미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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