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예정된 사정정국

2022.07.18 03:00 입력 2022.07.18 03:01 수정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벌써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30%대 초반으로 추락한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들이 분석한 지지율 하락 원인은 대동소이하다. 인사 실패, 경험·자질 부족, 경제·민생 소홀, 소통 미흡, 독단 등이다. 경험도, 능력도 없으면서 태도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정제혁 사회부장

정제혁 사회부장

윤 대통령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5일 도어스테핑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 실패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손가락질을 하며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와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날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임명이 늦어져서, 언론에, 또 야당에 공격 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 소신껏 잘하시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 장면을 보고 윤 대통령이 평정심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론과 싸우겠다’는 태도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국정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물론 여론이 금과옥조는 아니다. 다수 여론을 상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을 설득하는 능력 또한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한 말은 설득의 언어가 아니다. 더구나 인사 실패는 너무나 명백해서 집권세력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안이다. 윤 대통령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짜증을 내고 오기를 부린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는 말을 듣고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떠올랐다. 이런 무의식적 연상은 말과 실질 사이의 아득한 거리에서 오는 기괴함이 닮은 탓이 클 테지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갈수록 MB 정부 때를 닮아간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를 들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KBS를 비롯해서 MBC 다 민주노총 산하의 언론노조에 의해서, 언론노조가 다 좌지우지하는 방송 아닌가”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MB 정부의 방송장악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MB 정부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이명박씨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22.6%포인트라는 압도적 격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반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격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명박씨 집권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은 과반 의석인 153석을 쓸어담았다. 반면 지금 국민의힘 의석수(115석)는 민주당(169석)보다 54석이나 적다. 이명박씨는 사업가 출신이지만 정치·행정 경험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쳤다. 반면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대선에 직행했다. 정치·행정 경험이 전무하다.

이명박씨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사람이었다. 이씨의 대선 승리는 온전히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반면 윤 대통령은 대선 직전 국민의힘에 영입된 외부 인사이다. 여당과 대통령실 간에 유기적 결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MB 정부는 제법 탄탄한 기반 위에서 출발했는데도 실패한 정부로 기록됐다. 그럴진대 모든 면에서 역대 최약체 정부인 윤석열 정부가 MB 정부의 길을 밟아서야 승산이 있겠는가.

윤 대통령은 사정정국으로 힘의 열세를 만회할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숙청, 문재인 정부 초반의 적폐청산에서 보듯 대대적인 사정은 다수 시민이 공감하는 대의와 명분, 시대정신을 깔고 있어야 성공한다. 지금 ‘탈북어민 북송 사건’은 어떤가. 기껏해야 보수와 진보, 여권과 야권을 갈라치는 정파적 이슈일 뿐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일찌감치 검찰 직할체제를 구축해 검찰을 앞세운 ‘선검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주 SBS 여론조사에서 전 정권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응답이 ‘정당한 수사’라는 응답보다 다소 높게 나왔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사정은 성공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사정정국은 시작부터 실패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검사와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은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는 자리이다. 질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답을 하는 자리이다. 지금 시민들이 묻는 것은 ‘윤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고 전 정권 탓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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