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벌레와 꿀벌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

2022.07.11 03:00 입력 2022.07.11 03:02 수정

영상으로 만들어진 공익광고에서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떠도는 모습을 보면 막연하게 ‘기후’가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보면 북극곰도, 기후위기도 곧 잊어버린다. 밤에도 푹푹 찌는 더위에 시달리고, 맑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내리는 소나기를 만날 때면 한번쯤 다시 기후위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날씨가 선선해지고 나면 곧 잊혀질 테다. 그래서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두 곤충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에는 기후위기라는 잊어버린 주제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이달 초 한국 사람들의 입에 한동안 많이 오르내린 단어 중 하나는 ‘사랑벌레’다. 영어로는 ‘러브버그(love bug)’. 본명은 ‘털파리’라고 하는데 짝짓기를 한 암컷과 수컷이 이후에도 내내 꽁지를 붙이고 함께 날아다닌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사랑벌레는 지난달 말 서울 은평구를 비롯한 서울 서북부 지역에 갑자기 ‘대발생’했다. 처음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지역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알려졌고, 이후 언론도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금까지 나온 기사 등을 종합하면 사랑벌레는 ‘털파리류’의 한 종이다. 외국에서 온 ‘생태계 파괴자’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자생종인데 기록이 안 된 것인지, 외국에서 들어왔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13년에도 털파리류 중 하나로 주로 산과 들에 서식하는 검털파리가 도심에 출몰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번에 나타난 사랑벌레도 독성이 있다거나, 질병을 옮기는 등 위험한 곤충은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다.

‘사랑벌레 대발생’의 원인은 아직 모른다. 장마로 인한 습도 상승 혹은 기후변화로 인한 겨울 기온 상승 등이 이유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통상적으로 털파리류는 1년에 한 번, 늦봄에서 초여름에 성체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는 발생 시기가 늦은 편이다. 지난봄 극심한 가뭄이 닥치면서 흙속에 사는 사랑벌레 유충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다가 장마가 시작되면서 한꺼번에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을 수 있다. ‘따뜻한 겨울 기온’도 이유일 수 있다. 겨울이 추우면 곤충알의 생존율이 떨어지는데 지난겨울 기온이 올라가면서 알이 예년보다 많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극심한 봄 가뭄이든 따뜻한 겨울이든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가 수많은 사랑벌레를 인간의 거주지로 불러낸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는 지난 겨울과 봄에도 곤충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사랑벌레보다는 훨씬 더 친숙한 ‘꿀벌’이 주인공이었다. 사랑벌레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면 꿀벌은 너무 적어서 문제였다.

꿀벌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지난 1월 남부지방 양봉농가에서 월동 중이던 꿀벌들이 집단으로 없어졌다.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꿀벌 실종 미스터리’로 보도했다. 꿀벌 실종은 전국적으로 발생했고 조사를 진행한 농촌진흥청은 지난 3월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발표했다. 직접 원인은 응애지만 이번에도 그 끝에는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환경 변화가 있었다.

도시는 사랑벌레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털파리류의 유충은 흙에서 살아야 하는데 도시에는 이러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랑벌레는 사람들이 기겁을 할 만큼 대발생을 했지만 그리 오래 사람들의 곁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털파리류 성충 수컷은 3~4일, 암컷은 일주일가량 생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한 번에 200~300개가량 알을 낳기는 하지만 생존율이 높지도 않다. 전문가들은 “길어야 2~3주 정도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면 사람들도 곧 사랑벌레의 존재를 잊을 것이다. 앞서 꿀벌도 언론보도가 잦아들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벌레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라도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그 외양에, 털파리라는 귀엽지 않은 이름에 미워하기부터 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났는지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또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 것처럼 보였던 꿀벌들이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계속 알아보고 주시해야 한다. 사랑벌레도, 꿀벌도 기후위기의 주범인 인간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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