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도 시장 규제는 필요하다

2022.08.25 03:00 입력 2022.08.25 03:03 수정

삼성전자 직원의 지난해 평균 월급은 1200만원이다. 1999년 264만원에서 21년간 354% 상승했다. 경제가 성장한 만큼 임금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269만원에서 4004만원으로 216% 늘었다. 다른 기업은 어떨까.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통계를 보면 5~299명 중소규모 기업 임금은 190% 올라 GDP 상승률보다 낮았다. 300명 이상 기업 임금 상승률은 289%였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국가 전체에서 생산한 부의 가치가 경제주체들에게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임금 상승률이 높았다.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이 보다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은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가로챔으로써 소비자를 착취한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도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시장지배력 남용과 독과점은 행사하는 측을 제외한 모두에게 폐해를 준다. 한국에 시장경제 구조가 태동한 1960년대 초반부터 설탕·밀가루·시멘트 삼분(三粉) 가격 폭등과 같은 독과점 사건이 잇따랐다.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20년 가까이 법적 수단은 미비했다. 경제계가 반대하고 이를 정치권이 받아들인 탓에 법 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고 나선 건 아이러니하게도 신군부였다. 1980년 헌법을 개정하며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120조)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개정 이유에 ‘경제성장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고루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지향’ 대목이 있다. 신군부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도 제정했다. 시장지배력 남용행위와 경쟁제한 기업결합 금지 등 독과점 규제를 구체화한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정부가 주도한 경제 패러다임을 민간의 시장과 경쟁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기업을 마구잡이로 처벌할 수 없는 장치도 마련했다. 불공정거래와 같은 위법행위는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도록 전속고발권을 도입한 것이다. 독점적 권한은 공적 부문에서도 특권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단한 ‘밥그릇’이 될 수 있다.

검찰은 공정위가 소극적으로 전속고발권을 행사해 대기업을 봐주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실제로 대기업을 압박해 공정위 퇴직자들이 바통 넘겨주기 식으로 불법 재취업한 사실이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에 적발됐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은 대기업뿐 아니라 대형 법무법인에도 재취업이 많은 편이다. 과거 행정고시 성적 우수자가 대거 공정위를 지원했던 이유는 퇴직 후 ‘갈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검찰에 전속고발권마저 빼앗기면 빈털터리 신세가 될까봐 불안해한다.

재벌개혁을 주창했던 문재인 정부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했다. 그래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실패했다. 수사권 박탈 등 검찰 힘빼기에 주력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한 탓이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돼 공정거래 사건 수사까지 검찰이 떠맡으면 더 비대해진다는 이유였다. 민주당으로서는 재벌개혁보다 검찰 압박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과감한 규제완화를 주문하고 있다. 검찰 출신 윤 대통령은 과거 전속고발권 폐지에 찬성했는데, 지금은 유지하는 게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대기업을 지원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도 온기가 퍼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규제 부처인 공정위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정부 출범 100일을 넘긴 18일에야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새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한 후보자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혁신을 통해 없애야 한다”고 화답했다.

독과점과 시장지배력 남용을 규제하는 일은 성장 못지않게 중요하다. 5~299명 중소기업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삼성전자의 13%에 그쳤다. 21년간 삼성전자 임금이 4.5배로 느는 동안 중소기업은 2.9배에 머무는 등 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 낙수효과는 없었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경쟁력이 뛰어난 영향이 크지만, 시장지배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없었다면 삼성전자는 더 비대해지고, 중소기업은 더 열악해졌을 것이다. 깊어지는 불평등을 막아야 할 정부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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