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민주주의 퇴행과 4·10 총선

2024.04.02 20:34 입력 2024.04.02 20:35 수정

올해는 70여개 나라에서 전 세계 성인의 절반인 약 20억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시민 의견을 정치에 반영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 최근 치러진 러시아, 인도네시아 대선은 반자유주의와 장기집권, 세습, 유권자의 무관심 등이 확인돼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2022년 세계 민주주의의 질이 1986년 수준으로 퇴행했다고 분석했다. V-Dem은 선거·자유주의·참여·심의·평등 5가지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 건전성을 평가한다.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DEA)가 조사하는 ‘글로벌 민주주의 상태 이니셔티브(GSDI)’는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하락했다. 1975년 이후 가장 긴 하락세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23년 세계 자유가 18년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가 감소한 국가는 52개였고, 개선 국가는 21개뿐이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민주주의 지수는 2006년 지수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와 소련 연방 해체로 만개한 듯한 민주주의는 하락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10여년 전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침체기’라고 표현했던 래리 다이아몬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06년부터 자유를 비롯한 헌법주의, 법치주의, 견제와 균형 등 여러 민주주의 지표들이 퇴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가 점쳐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맞대결로 분열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트럼프는 당선된다면 정치보복과 독재를 서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의 등대’ ‘자유세계의 상징’으로 불렸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국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했다.

정권에 따라 민주주의가 진보와 후퇴를 거듭해온 한국 역시 퇴행을 겪는 중이다. V-Dem의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하락세가 두드러진 42개 ‘독재화(Autocratization)’ 국가에 포함됐다. 언론 자유가 크게 위축된 20개국에도 포함됐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지난해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전년보다 4계단 떨어진 47위였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간섭이 노골화하고 있어 올해도 지수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원인을 한국 상황에 대입해 찾아보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정치적 대립은 갈수록 심해진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이 사라졌다. 각 당 내부를 봐도 마찬가지다. 절대 권력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패거리 행태와 다르지 않다. 친윤이나 친명이 아니면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해 국회 진출의 싹을 잘라냈다. 내부에서 쓴소리 내는 비주류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주의 구현의 장인 국회를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대체하는 듯하다. 깊어진 경제 불평등은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이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고 있다. 독재적인 정권은 검찰에 권력을 집중시켜 남용을 초래하고, 견제와 균형이 설 자리를 빼앗았다. 선거 때마다 헛된 공약을 남발하면서 “일단 되고 보자”는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가짜뉴스의 횡행은 시민의 판단과 선택을 왜곡한다.

민주주의를 회복할 계기가 될 수 있는 4·10 총선이 코앞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년 전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전체 의석의 94.3%를 차지했다. 위성정당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을 양당이 대부분 가져간 탓인데, 이번 총선에도 되풀이될 것 같다. 거대 양당 독주체제가 이어진다면 절망적이다. 제3지대 없는 국회는 다양성이 사라지고, 토론과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다고 투표를 포기하지 말자. 안 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투표하면 바뀔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하지 않나. 각 당 공약을 찬찬히 살펴보면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국가와 지구의 미래라는 거창한 의미가 아니어도 괜찮다. 나와 가족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공약을 찾아 투표하자. 민주주의 퇴행을 막는 것은 정치에 참여해 의견을 표현하는 시민의 책임이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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