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심정

2022.09.16 03:00 입력 2022.09.16 03:01 수정

장애연구자 다수는 장애인 가족
사회에 대한 흥미가 아닌 염려와
돌봄 주체이자 해방의 일원으로
자료를 모으고 문장을 쓰는 마음
그들의 마음을 꼭 껴안고 싶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당신 공부의 동력은 무엇인가. 오래전 어느 선생이 내게 물었다. 그때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연구 대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나아가는지를 지켜보고 싶다고. 이런 호기심이 내 공부를 이끄는 것 같다고. 거짓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낯 뜨거운 답변이었다. 너무 겉멋을 부렸다. 다른 새의 깃털을 제 몸에 꼽았던 이솝우화의 까마귀처럼, 남의 문구를 빌려서 내 공부의 동기를 장식했다. 사실 그것은 미셸 푸코의 말이었다. <성의 역사> 제2권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것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런 호기심 말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런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 철학이란, 다시 말해 철학적 활동이란 …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걸 정당화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어디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 글을 읽은 후 나는 호기심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다. 나를 정당화해주는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나를 방황케 하는 공부, 그리고 이 공부를 통해 내가 나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호기심이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공부란 호기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만큼 나를 매혹시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신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거나 서럽고 화가 나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서일 수도 있다. 공부하는 심정도 그렇다. 호기심 때문에 더 멀리까지 파고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염려 때문에 더 멀리까지도 살피는 사람도 있다.

요즘 몇몇 사람들과 장애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느 글을 읽다가 오래전 읽은 사회학자 김진균 선생의 글이 떠올랐다. 선생은 장애학 연구자도 아니었고 내가 아는 한에서 장애 문제에 관해 특별히 언급한 글도 없다. 그런데 영국의 한 장애학자의 글을 읽다가 선생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이 40년 전쯤 썼던 <역사현실과 대결하는 사회과학>에서 썼던 ‘심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영국 장애학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특별할 것은 아니었다. 장애학 연구자들 중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많은데 비장애인 연구자의 경우에도 상당수는 장애인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는 저명한 비장애인 연구자들을 소개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장애인 자녀를 둔 경우, 장애인 부모를 둔 경우, 장애인 형제를 둔 경우 등의 범주에 들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이들의 공부하는 심정을 생각했다. 세상의 많은 학자들이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 가족을 둔 사람들이 장애학 연구자가 된 이유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차별과 배제, 주변화 등은 장애인들의 사회적 실존을 묘사하는 말인 만큼이나 장애학의 학문적 실존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억압과 차별받는 존재로서 혹은 그 존재의 가족, 친구, 동지로서 공부하고 있다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 자료들을 확인하고 통념을 비판하고 차별의 구조를 폭로할 때 이들의 연구를 추동하는 힘을 호기심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읽은 글에서 김진균은 첫 단락을 반성과 자기성찰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사회과학도는 반성과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고 사회적 역사적 구조를 객관화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독특한 말을 덧붙였다. 이런 반성과 성찰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원천적으로 참회로부터 시작된다”고. 그러고는 분단사회에서 사회과학도로서 공부하는 심정을 토로했던 선배학자들의 글을 몇 편 인용했다. 연구 주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객관적이고 엄밀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훈련받던 중에 읽었던 글이라 참 낯설었다. 이 낡고 종교적인 느낌마저 풍기는 문장들을 버리지 않고 기억 어느 편에 넣어두었는데 새삼 다시 꺼내보게 된다. 사회현상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염려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그 돌봄의 주체이자 해방의 일원임을 생각하며, 자료 하나를 모으고 문장 하나를 쓰는 마음, 이 고색창연한 마음을 꼭 껴안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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