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지난달 읍에서 좀 떨어진 면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강연을 했다. 같은 군이지만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라 평소에는 왕래가 없던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교육이주를 한 분들이 마을의 이런저런 일을 도맡으며 활동하고 계셨다. 조금은 심심한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고 같이 식사를 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행사를 준비한 쪽이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면에는 김밥집이 없고 빵집도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빠지는 면에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케이크라도 하나 사려면 읍내로 차를 운전해 나와야 한다. 약국이나 병원이 없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배달앱이나 지도로 10분 내에 먹을거리나 편의시설을 찾는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곳에 살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도시와는 다른 환경, 다른 분위기에서 쫓기듯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보다 일자리, 교통, 교육 때문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뭔가 엄청난 결단을 내리며 사람들이 이주를 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소소한 불편함이 지역을 떠나게 만든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힘을 모아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행정이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사실 시장에 맡겨서 상권이 형성되지 않으면 행정이 나서서 복지서비스로 만들면 된다. 마을에서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 자리를 잡도록 공간이나 사업비를 보조하고, 거주가 어렵다면 일정한 간격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면 된다. 아마도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고 있다면 본인들이 답답해서라도 나설 일이다. 하지만 면에 사는 공무원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복지는 돈 문제일까 의지 문제일까

이렇게 복지를 주장하면 행정은 법을 들고 나와 시설을 운영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매년 점점 더 많이 늘어난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교부받은 사람이 1급은 150만명, 2급은 605만명을 넘는다. 자격증이 있다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러다간 마을에서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죄다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행정이 정말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면 이런 기본적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제인데도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의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고, 때로는 자치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있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하고는 싶지만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앙·지방정부의 책임 회피에 피해를 보는 건 주민들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재정이라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어렵다지만, 결산서를 보면 우리 지역의 순수잉여금인 순세계잉여금이 2021년에 262억원을 넘었다. 돈의 문제인가, 의지의 문제인가?

그러면서 행정은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정책사업들을 컨설팅회사나 대학에 연구용역을 맡겨 버리고, 주민들에게 갔으면 깨알같이 잘 쓰였을 돈이 이름만 번지르르한 사업비로 지출된다. 행정이 직접 계획을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어, 작년에 연구용역비로만 20억원이 지출되었다. 중앙정부의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계획서도 외부 용역사에 맡기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행정도 주민들의 말을 안 듣는데, 용역사가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계획을 용역사에 맡길 거라면 대체 군청은 왜 있어야 할까? 이럴 바엔 주민들이 직접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더 낫겠다.

지방소멸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이러면서 행정은 지방소멸이 어쩌고 하며 본인들의 자리 걱정이나 할 것이다. 인구가 줄어도 주민들은 계속 거기 살겠지만 행정체계는 통합되고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의 상당수가 인근 도시에 살아 지역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다. 농촌에서는 군청이 가장 큰 회사라고 말하는데, 그 직원들이 지역에 살지 않으니 그 회사가 잘될 리가 없다. 지역의 위기는 이주하는 주민들이 아니라 내 일자리만 챙기는 행정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는 데모스, 즉 거주민들이 결정하는 체제였다. 본인들이 살지 않을 거라면 결정권이라도 내놔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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