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민주주의의 방정식을 새로 짜자

2024.06.03 20:27 입력 2024.06.03 20:33 수정

내가 살고 있는 충청북도 옥천군에는 모두 350개가량의 송전탑이 있고 1975년에 만든 변전소도 하나 있다. 변전소가 있는 면에는 송전탑 149개가 집중되어서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송전탑이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선거 때마다 송전탑 이전 이야기가 나온다.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설명과 환자가 늘어나는 불안한 현실 사이에는 타협점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에 짓밟힌 에너지 민주주의

전국에 세워진 크고 작은 송전탑이 이미 4만개. 그럼에도 송전량이 많고 손실이 적다는 이유로 765㎸ 초고압송전탑은 늘어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여전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발전소가 새로 생기는 만큼 주요한 소비처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의 수와 규모도 늘어난다.

예를 들어 정부는 경기 용인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많은 양의 물과 전기가 필요한데, 이미 전체 전력량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더 많은 전력을 충당할 방법은 무엇일까?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산업단지 내에 액화천연가스 발전소 6기를 만들고 나머지는 동해안과 호남의 발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한 ‘국가전력고속도로(ETX)’가 서해안 바다 밑과 강원도를 지나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육상에 건설될 예정이다. 정부는 산업단지의 빠른 건설과 운영을 위해 송전선로를 만드는 기간을 단축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따라서 초고압송전탑을 둘러싼 갈등도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니 갈등이라고 말하면 이해관계의 충돌 같지만 기본적인 민주주의가 무시된 결과이다. 보통 초고압송전탑 건설사업은 지역주민들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계획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늦게서야 소식을 접한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투쟁 아니면 보상밖에 없다.

법에 따르면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일방적인 설명회나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보상은 필요하지만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특별지원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는커녕 공동체를 파괴한다. 우리는 10년 전 밀양의 반대농성장을 강제철거했던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참혹하게 짓밟힌 민주주의를 이미 목격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국전력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면 반도체 공장을 계획할 때 그 공장을 만들고 운영할 에너지와 자원부터 합리적으로 계산할 것이다. 만약 송전탑이 필요하다면 사람이 적고 노인이 많아 반대가 약한 지역에 짓는 방식이 아니라 그 수와 희생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계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경제성장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사회에 살고 있고 피해는 약한 지역과 생명에 집중된다.

민주적인 방정식부터 세우자

다수를 위해 양보하자고 하지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이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해 희생당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듣고 결정에 반영하는 정치질서이다. 에너지 민주주의 관점으로 보면, 이제는 전력을 많이 쓰는 수도권에 발전소를 더 많이 지어 송전탑을 줄여달라는 요구가 정당하다.

지난달 우리집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1000원이었다. 지붕에 달아놓은 4㎾ 태양광발전기 덕분에 필요한 전력을 쓰고도 남아서 다음달로 잉여량이 이월되었다. 요즘 날이 맑아 발전량이 많았던 덕이다. 반면에 흐린 날이 많은 달에는 외부전기를 써야 하니 자급과 연계의 기술이 함께 필요하다.

전력체계를 잘 만드는 것은 사회의 중요한 과제이고 이 체계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관련 정보를 시민들에게 충실히 공개하고 함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필요전력을 지역 내에서 생산해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지역 간 전력을 민주적으로 연계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전력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책임도 더 강해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전력생산량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일차방정식만 추구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정식이 달라지고 복잡해져야 하고, 그만큼 해법도 다양해져야 한다. 정부가 못하면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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