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한국제국주의’ 원했던 건가

2022.11.24 03:00 입력 2022.11.24 03:04 수정

한국인들(남북한)은 너나없이 제국주의 비판에 열을 올린다. 지위고하·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제(美帝) 욕을 해대는 북한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사람들도 그에 못지않다. 대신 미제가 아니라 일제(日帝)다.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이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이 문제만큼은 총화단결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 근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음모의 산물이고, 메이지 정권 수립(1868) 당시에는 일개 약소농업국에 불과하여 제국주의를 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 없었던 일본은 이미 이때부터 ‘일제’다. ‘일제’는 강화도조약(1876)부터 한국병합(1910)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침략을 치밀하게 기획하여 결국 실현해 내었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런 시각은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격변의 40년 동안 일관되게 대외방침을 유지하고 부동의 실천력으로 다른 나라를 집어삼켰으니, 이런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은 국내의 반정부파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 어떻게든 조약을 성사시키려고 허둥댔고, 조선 외교 관료들은 무능했다고만은 매도할 수 없는 교섭력을 보여줬다. 강화도조약의 내용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불평등하지만은 않았다(서울대 김종학 교수 등의 설). 이때부터 적어도 청일전쟁(1894)까지 일본은 능수능란하게 한국병합을 착착 추진한 것이 아니라, 갈팡질팡, 우왕좌왕했다. ‘일제’를 규탄하려다 본의 아니게 일본을 ‘무소불위의 능력자’로 만드는 이런 시각은, 자연스레 당시 한국인들의 대응을 ‘예정된 실패’로 왜소화시켜 버린다. 침략에 대한 일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다가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다.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는 희한한 현상을 유발한다. 제국주의라면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이 ‘대쥬신제국’ 운운하며 한국사에 제국을 만들지 못해 안달한다. 이들이 날조한 ‘조선제국’은 산둥반도 백제 진출설, 일본열도 삼한 진출설을 넘어 이따금 중앙아시아로도, 심지어는 동유럽으로도 확장한다. 이런 사이비역사학은 조소와 함께 비교적 쉽게 치지도외(置之度外)할 수 있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이에 폭넓게 잠재되어 있는 ‘제국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다. 오래전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지만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고려 관련 전시는 고려가 가끔 자칭한 ‘황제국’ ‘천자국’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했다. 내가 볼 때 하나의 ‘소극(笑劇)’이었던 대한 ‘제국’ 수립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심성도, 또 ‘만주고토 회복’ 운운에 대해 대중적 인기가 여전한 것도, 한국인들이 제국·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내심 그리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일본의 자유주의 정치가·언론인이었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은 “자고로 어떤 민족도 타 민족의 속국이 되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할 민족은 없다”며, 일본이 식민지를 다 포기하고 무력이 아니라 무역으로 더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일본제국주의는 이를 일축했다.

그런 일제는 패망했지만, 거기서 독립한 대한민국은 지난 80년간 눈물겨운 고투를 벌인 끝에, 이제는 좌우 진영을 불문하고 그 성취를 인정하는 나라가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이 그만 ‘열강(列强)’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 더 분발해서 ‘한국제국’이 되어야 할까? 대한민국은 제국주의와 식민지지배를 하지 않고도 ‘열강’과 선진국이 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이시바시의 염원을 일본제국은 환상이라고 코웃음 쳤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한국근대사가 위대한 점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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