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내년에는 나도 ‘페스코’를

최근 공동체 공론장에 낯선 단어, ‘페스코’가 등장했다. 11월 한 달 동안 진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젊은 남성 회원 한 명이 자신을 페스코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페스코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준말이고, 소·돼지·닭 등의 고기는 먹지 않되 우유·치즈·달걀, 그리고 해산물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의 한 종류를 뜻하는 말이란다. 알고 보니 채식에도 여러 등급이 있었다. 완전 채식인 비건부터 락토, 오보, 페스코, 폴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유연한 플렉시테리언까지.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나는 오랫동안 잡식주의자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잡식이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트렌드가 되어가는 채식이, 유기농처럼, 처음 시작과 달리 건강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고, 중산층 가족의 식탁에만 허용되는 계급적인 것으로 변질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적게 먹고 소박하게 먹고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실제 공동체에서 탁발에 의존해 식탁을 차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채소 중심의 식단이 꾸려진다. 그러다 가끔, 즉 공동체 김장 울력 날, 다 같이 둘러앉아 김장 쌈에 수육을 곁들여 막걸리 한잔하는 기쁨을, 혹은 외부 손님을 초청하는 인문학 축제 때 제육볶음을 메뉴에 추가하는 정성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내가 좀 변했다.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요 몇 년 나는 스쿨미투를 감행했던 젊은 청년들을 만나왔는데 한편에선 이들을 응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이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점차 이들이 성차별뿐만 아니라 종차별에도 매우 민감한, 일종의 우리 사회 차별 오염 지표 생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나의 낡아버린 감수성이었다. 오래전 나와 내 친구들에게 “너희 페미니스트들은 사소한 것도 문제 삼아서 너무 피곤해”라고 말하던 남성들의 자리에 어느덧 내가 앉아 있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도 충격적이었다. 영상 속 그 작은 문어는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변신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천적 상어에게 다리 하나를 뜯긴 이후에도 눈물겨운 분투를 통해 결국 살아남아 종 번식을 한다. 폴 리쾨르는 반만 맞았다. 인간만 이야기적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겐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 나는 문어를 더 이상 문어 ‘숙회’로 여기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가 있다. 그 책을 읽은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올해 1월 첫 일요일, 우연히 그 책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 단숨에 읽었고 책을 덮은 다음 좀 울었다. 나는 그날, 훔쳐서 구조한 돼지, ‘새벽이’를 돌보는 그 생크추어리가 우리 사회 반차별투쟁의 최전선이자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성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올해 내내 수십 가지 이유를 대며 비건 결심을 미루고 있었다. 늙은 엄마와 살면서 고기 없는 식탁을 차릴 수 있을까? 비건의 단백질 섭취를 도와주는 대체육은 정말 윤리적인 것일까? 공장식 축산을 피하려다가 실리콘밸리의 거대 실험실 식품 기업에 먹거리 통제권을 송두리째 넘겨주는 것은 아닐까? 소식좌인 내가 가끔 즐기는 소소한 쾌락, 그러니까 맥주에 곁들이는 치킨 몇 조각까지 금해야 할까?

그러다가 최근 머스크의 동물실험 기사를 읽고 다시 정신이 번쩍 났다. 브레인 칩 기술을 개발하는 실험 과정에서 원숭이는 뇌가 파괴당하거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실험 속도를 높이라는 머스크의 압박 속에서 폐사된 동물이 원숭이 280마리 포함 총 1500마리나 된다. 이쯤 되면 이건 홀로코스트나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나치가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 제국주의자가 식민지 민중을 다루는 방식과 정확하게 동형적이다.

올해 내내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 노동자, 여성 등 동료 시민에 대한 차별과 모욕, 조롱이 끊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폭력과 살육도 계속되었다. 최악은 우리 모두 점점 이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새해가 온다. 세상이 달라질까?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해본다. 어떤 폭력도 반대하며, 모든 생명은, 그것이 원숭이든 돼지든 닭이든, 애도할 만한 가치를 동등하게 갖고 있다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또 무뎌지는 나의 감수성을 계속 갱신하기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직 초보니까 ‘페스코’부터 시작할 작정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