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새’ 해라는 상징의 힘

2023.01.10 03:00 입력 2023.01.10 03:01 수정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보통 인간은 ‘이성’의 동물로 추앙받아 왔다. 인류학자 로이 라파포트(1926∼1997)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그 ‘이성’을 해석한다. 인간의 가장 큰 진화적 특징은 언어이며, 그 언어의 핵심은 ‘상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언어의 상징이 지닌 가장 첫 번째 악으로 ‘거짓말’을 꼽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아니 동물보다 훨씬 뛰어난 차별적 능력이 바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이라 본 것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제 새해가 밝은 지도 열흘이 되었다. 새해 첫날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어제 뜬 해가 오늘 뜬 해와 다른 ‘새’ 해일 수 있겠는가? 어제까지는 평범해 보이던 자연의 태양이 어떻게 다시 떠오를 때 희망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기원의 상징물이 될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눈에는 온통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리고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어제까지 해결되지 않던 다툼의 현장들이 해가 바뀐다고 없던 것으로 삭제 버튼이 눌러지는 것도 아닐 테다. 어제도 차가웠던 갑의 얼굴도, 그리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냉기도 1월1일이 밝았다고 거짓말처럼 바뀔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제의 해를 특정 시점이 되었다고 ‘새’ 해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작심삼일을 위한 자기기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까? 라파포트는 인간의 첫 번째 악 ‘거짓말’을 인간 스스로 극복해낸 해독제로 ‘의례’를 지목한다. 그는 ‘의례’가 지구-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으로 보았다. 인류만큼 오래된 이 의례라는 상징적 행위가 어떻게 언어에 내재한 거짓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례란 고루한 절차주의적 전통이라고 들리기도 하는데 과연 어떤 힘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을까 반문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마저 또 다른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내가 주목하는 의례의 핵심은 ‘문지방’(limen)이라는 상징이다. 문지방 혹은 경계선으로 번역되는 ‘limen’은 의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입학식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즉, 문지방을 통과한 순간) 입학식이라는 의례는 시작된다. 그리고 식이 종료되고 식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의례는 종결된다. 그 의례의 시공간 안에서는 모든 이들이 의례에 참여한 전인적 인간으로 서로를 성스럽게 마주한다. 새해라는 상징도 결국 커다란 문지방에 속한다. 1월1일 새해가 떠오르는 동해안 지평선에서 그곳, 그 순간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희망을 기원하는 의례의 참여자가 된 것이다. 그것이 헛된 기대로 판명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즉 의례란 문지방이라는 상징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공동의 퍼포먼스를 뜻한다.

우린 이러한 의례적 행위를 문화의 영역으로 해석한다.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는 그 사회의 규범이다. 규범은 영어로 ‘norms’다. 쉽게 이해하면 ‘기준(standard)’의 집합이다. 한 사회가 옳다고 믿는 것들의 집합이 곧 규범이다. 의례적 행위 역시 그 사회에서 옳다고 믿는 것들의 실천이다. 즉, 새해에 함께 떠오르는 ‘새’ 해를 목격하며 희망을 기원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옳은 행위다. 거짓된 행위나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온갖 거짓말들이 초래한 아픔과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동의 기원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것이 라파포트가 주목한 의례의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상호믿음이 기반이 되어야지만 상징이 의례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그 거짓말 같은 상징이 또 다른 거짓말들을 해결하는 해독제가 되기 위해서는 약속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럼 결국 새해라는 우리의 상징이 전정 힘을 갖기 위해서는 믿음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상호신뢰가 의례를, 의례가 상호신뢰를 회복시키는 해독제인 셈이다.

상징은 의례의 핵심이다. 상징은 어원상 적이 아니라는 표식이다.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에서 의례를 적이 아닌 사람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이라 했다. 그는 리추얼 종말의 시대에 사람들이 서로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을 중단했다고 지적한다. 그 상징의 힘을 차단한 채 가상의 스크린에 홀로 머물러 있는 시대로 본 것이다. ‘다시’ 떠오른 해를 ‘새’ 해로 우리들 마음 ‘안’으로 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상징의 힘이 필요할까? 그건 아마 ‘어제의’ 해를 잊지 않는 기억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신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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