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김부겸·이정현이 생각나는 아침

2023.01.12 03:00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 김부겸과 새누리당 이정현은 각자의 ‘적진에’ 깃발을 꽂았다. 김부겸은 대구 수성구에서, 이정현은 전남 순천에서 눈물겨운 승리를 했다. 기쁨은 두 사람의 것만이 아니었다. 이편저편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갈채가 쏟아졌다. 참 소중한 결실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겨울 감나무에 걸려 있는 ‘까치밥’이라고 했다.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 겨우내 까치가 먹으라고 남겨놓는 홍시라는 얘기다. 까치밥은 까치도 와서 먹고 딱새도 먹고 직박구리도 먹고 가는 달콤한 겨울 양식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

두 개의 정당이 각자의 텃밭을 독점지배하는 지역할거 정당 체제이지만 ‘싹쓸이’를 하지 않고 김부겸과 이정현을 당선시키는 대구와 전남 사람들의 마음이 겨울새들을 위해 홍시를 남겨주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는 비유였다. 선거 결과를 보면서 모두 설레는 가슴을 숨기지 않았다. 대구와 광주에서 일하고 있던 교수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리산에 모였다. 그리고 이렇게 ‘무리한’ 해석까지 내놓으며 즐거워했다. “지역할거 정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나비의 날갯짓이 분명하다. 곧 폭풍이 일어나 지역주의의 벽을 날려 버릴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문이 드디어 열리고 있다.” 이런 황당한 말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의 정당이 지역을 배타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그저 희망을 담은 관측이었다. 나비효과는커녕 그 이후 대구와 전남의 감나무에서는 ‘까치밥’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울새를 위해 달아놓았던 홍시는 여의도에서 불어온 지역주의 바람에 다 날아가 버렸다. 지역으로 국민을 갈라치면서 상대지역을 악마화하고 흑백논리로 선택을 강요하는, 그래서 까치밥마저 따 버리는 겨울바람의 진원은 서울 여의도였다.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송수권의 시 ‘까치밥’에서)

지역으로 나라를 두 쪽 내어놓고 서로 으르렁거리게 만들고 몰표를 강박하는 것은 서울 여의도의 정당과 정치인이지 영남과 호남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지역 대결을 부추겨 놓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울 여의도의 정치인들은 세상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역할거 정당 체제를 만든 책임을 호남과 영남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우는 것은 ‘희생자 비난론’이다. 호남과 영남에 사는 이들의 마음에는 ‘까치밥’이 있다. 그래서 ‘겨울을 나는 날짐승들을 생각하며,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얼마나 마음이 허전할까’ 싶어 까치밥을 남기고, ‘철없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의 올가미로 영호남에 사는 사람들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매 놓고 자신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정치 생활을 즐기면서 책임은 희생자에게 넘겨버리는 여의도 정치인들은 영락없는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다. 이 올가미를 벗어야 한다. “소선구제는 양당체제와 친화력이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 정치학자 듀베르제(Maurice Duverger)가 두 개의 지역, 두 개의 국민을 낳고 있는 우리나라 소선거구제의 심각한 현실을 보았다면 놀라자빠졌을 게 분명하다. ‘까치밥마저 따 버리려는 서울 조카아이’는 여전히 철없는 모습이다. 최근 몇 주째 선거구제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서울 조카아이’들은 엉뚱한 소리만 주고받고 있다. 하나같이 ‘최고강령’을 내걸면서 모양 나는 얘기만 하고 있다. 각자의 생각에 가장 이상적인 가치와 기준을 내걸고 제도 비평과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러니 상대편 주장이 틀렸다는 말부터 한다. 그들이 언제부터 ‘가장 이상적 가치와 기준으로’ 정치를 했던가? 정말 밉살스럽다. 이렇게 가면 또 좌절한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최소주의’ 혹은 ‘최소강령’을 원칙과 목표로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정신을 발휘하여 조금이라도 성과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작더라도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결실을 얻어서 정치개혁에 대한 효능감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까치밥’이 겨울 하늘에서,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선거제도 개혁에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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