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성장의 노예로 살 것인가

2023.03.08 03:00 입력 2023.03.08 03:03 수정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잡았다. 지난해보다 0.5%포인트 낮은 것으로, 1991년 4.5% 이후 32년 만의 최저 목표치라고 한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저성장을 걱정하고 있다. 비관적 전망이 잘 들어맞아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초거대 위협(MegaThreats)>에서 글로벌 경제가 부채 위기와 금융 붕괴,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등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성장률은 2.6%로 전년(4.1%)에 비해 1.5%포인트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근 2년간 성장률 5.6%, 2.9%보다 낮다. 한국 성장률이 2년 연속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1992년 가입 후 처음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1.6%로 지난해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더 낮게 잡기도 한다. 3년 연속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총생산(GDP)이 1년 전에 비해 어느 만큼 늘어났는지 따지는 성장률은 국가들 간 경쟁의 성적표로 인식되고 있다. 성장률이 높아야만 그 정부가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낮은 성장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가미래전략 구상을 발표하면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지속해 끊임없이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생률과 급속한 고령화, 적은 이민자 등 저성장의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생산량을 늘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저성장 탈피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GDP는 말 그대로 생산물의 총합이니 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수출을 늘리는 게 기본이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산업구조를 기술·지식 집약형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산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 및 규제 완화로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면 뭐가 달라질까. 생산이 증가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도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GDP가 늘었다고 시민 삶의 질이나 행복감까지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소득과 행복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이스털린’ 역설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과 행복도는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소득이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멈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빈곤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까지는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이후에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과 이어지지 않는다.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국 순위는 전체 146개국 중 59위였다. GDP 기준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행복 순위는 한참 떨어진다. 행복보고서가 처음 나온 2012년 한국 순위는 11위였으나 2016년 이후 줄곧 50위권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12년 2만4000달러에서 2021년 3만3000달러로 증가했다. 그 기간 행복보고서의 한국 점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소득이 늘어도 시민의 행복은 늘지 않고 있다.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에스테르 뒤플로 MIT 경제학과 교수 부부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경제학자들이 유용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여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 생산이 불가피한 성장 추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부추겨 지구를 병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성장하지 못하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성장에서 벗어나 시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저성장 국면은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다. 분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공공재를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성장이라는 괴물의 노예로 살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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