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삼장법사’가 될 수 있을까

2023.03.11 03:00 입력 2023.03.11 03:02 수정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정말 도래한 것일까. 최근 몇년간 4차 산업혁명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다 하면서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흥분하거나 혹은 두려워하는 사이에 상상 속의 미래가 이미 현재 진행형이 되어 버렸다. 알파고부터 GPT-3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기술이 연이어 등장할 때만 해도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다른 세상의 일 또는 학계나 업계의 영역으로 생각했는데, 일반인들도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다시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을 꼽아보는가 하면, 생존전략을 세우기에 분주하다.

그야말로 ‘챗GTP’ 열풍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미 가입자가 전 세계적으로 1억명을 넘어섰고, 하루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고 유료 가입자도 이미 지난달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언론이나 인터넷 매체, 학계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챗GTP에 대한 기사와 논문을 쏟아내고, 관련 학회가 열리고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인공지능의 지배가 시작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이른바 ‘특이점’이 찾아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2016년 봄 서울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대국을 벌여 4 대 1로 승리를 거둔 이른바 ‘알파고 쇼크’가 있은 지 7년이 지난 요즘 다시 챗GPT 때문에 설왕설래하고 있다.

사실 이제 챗GPT와 같은 형태의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은 그리 낯설지 않은 알고리즘이다. 챗봇, 즉 이루다, 시리, 알렉사 등 말을 알아듣는 인공지능에 대해 신기해하기도 하고, 새로운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한마디로 신통방통하다. 챗GPT는 초거대형 언어 모델 방식의 인공지능 챗봇이다. 대화 속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 추론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챗봇은 있었지만 최근 등장한 챗GPT는 기계적으로 문답만을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질문의 맥락까지도 파악하여 물음에 대해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작성해 준다. 이미 미국에서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의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과거에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식별하던 방법인 ‘튜링 테스트’가 무색할 정도이다.

필자도 가야산 산중에서 인터넷을 통해 챗GPT를 사용해 보았다. 나름 관심 분야이긴 하지만, 하면 할수록 감탄과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신통방통하게도 묻는 말에 기대 이상으로 대답해낸다. 종교와 철학은 물론 큰스님에게나 물어볼 만한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답변을 해낸다. 그러다 문득 신도들에게 법문할 설법안을 인공지능에 대신 작성해 보라고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삶과 수행에 관한 불교적 가르침’이라는 주제로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법안을 써달라고 입력했더니,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논리정연한 설법안을 만들어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아마도 옛 스님들이 이 챗GPT를 보셨다면 놀라 까무러쳤을 듯하다.

불교 전통에서는 오래전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장과 스님들의 계율을 다룬 율장, 그리고 이에 대한 주석서인 논장, 이 세 분야를 망라해서 탁월한 이해와 통달한 수준을 보인 스님들을 ‘삼장법사(三藏法師)’라고 높여 부른다. 우리에게 삼장법사가 익숙한 호칭인 이유는 손오공이 등장하는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제도하는 스님으로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삼장법사’는 인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경전 번역을 주도하면서 경전에 깊은 조예를 가진 스님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던 옛날에는 어렸을 때 출가해서 총기가 예리한 동자 스님들이 경율론 삼장을 통째로 달달 외우고 암송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챗GPT의 등장으로 이 ‘삼장법사’의 지위도 조만간 인공지능에 양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어디 깨달음이 말로 글로 되는 것이겠는가. 인공지능의 시대, 깨달음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상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고요한 도량에 울려 퍼진다. 아직 10대의 앳된 사미승이 있는 힘껏 장삼 자락을 휘날리며 법고를 두드린다. 저 어린 스님이 살아갈 미래에도 여전히 종교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번뇌 망상을 피워서 그런가. 오늘따라 큰 법당에 오르는 계단이 가파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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