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제로

2023.04.13 03:00 입력 2023.04.13 17:20 수정

‘코카콜라~ 맛있다. 코카콜라~ 맛있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제로>는 음원차트 정상권을 오르내렸다. 싱글 앨범으로 발매됐지만, 음반이라기보다는 CM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코카콜라 제로를 광고하기 위한 노래다. ‘제로’는 ‘비존재’의 의미 대신 ‘매력’의 영역에 자리잡았다. 뉴진스는 ‘Cool함은 그대로, 부담감은 제로. Sweet함은 그대로, 불안감은 제로’라고 노래한다. 칼로리라는 ‘거부’와 ‘부담’의 영역을 ‘제로’로 치환하고 순화한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제로’는 노랫말처럼 쿨하고, 달콤하고, 부담감과 불안감을 없애주는 ‘매력’의 신호일까. 디지털 세계는 과거 산업사회의 규칙을 해체하는 중이다.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신호는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유통업 형태를 낳았고, 이는 ‘제로를 향한 경주(Race to Zero)’를 탄생시켰다. 과거 소매 유통업은 인접성이 열쇠였다. ‘단골손님’은 중요한 자산이었다. 플랫폼 산업이 소매 유통업을 침식하면서 업주와 손님 사이의 물리적 관계는 무시된다.

유통 및 보관, 판매 비용 등 소매 유통에 필요한 주요한 비용들이 디지털로 대체되면서 할인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윤을 0으로 수렴시키는 싸움을 이어가면서 생존을 통한 ‘독점’을 노린다.

레이스 투 제로는 도박판을 연상시킨다. 도박판에서는 모두 똑같은 ‘기회’와 ‘확률’이 주어져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이 많아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판돈을 모두 잃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 레이스 투 제로의 승자는 아마존이었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저자 스콧 갤러웨이는 아마존을 두고 ‘웃는 얼굴의 파괴자’라고 묘사했다.

빈틈 파고들어 노동자 지위 부정

노동 역시 해체되고 있다. 긱(Gig) 이코노미는 음악 공연 이벤트와 같이 단기적인 일을 의미하는 데서 유래했다. <플랫폼 임팩트 2023>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영국의 성인 7명 중 한 명이 매달 긱 노동을 수행하고, 약 72%의 긱 노동자는 전체 수입의 반이 안 되는 수입을 긱 노동으로 벌고 있다. 영국 GDP의 9.2%가 긱 경제에서 나왔다.

긱 경제의 특징은 노동시간 계약이 없는 ‘제로 시간 계약’ 노동이라는 점이다. 우버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우버 사측은 운전기사와의 계약이 고용 관계가 아닌, 독립적인 계약자와의 계약임을 주장한다. 우버는 운전자들을 승객과 동등한 IT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로 취급한다. 우버는 자사의 플랫폼이 운전기사와 승객을 연결하며, 이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활동임을 강조하면서 노동법의 빈틈을 파고든다.

2021년 2월 최종 확정된 판결에서 영국 고용심판소는 우버 운전기사들의 노동을 측정되지 않은 노동으로 규정했다. 로그인을 한 순간부터 실제 노동이 이뤄진 시간까지만 노동으로 판단했다. 플랫폼 노동은 ‘준비시간-대기시간-휴게시간이 제거된 형태의 일거리들’로 규정됐다. 이 판결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는 산업사회에서처럼 시간 중심적 노동패턴에 기초해 임금을 지급받지 않고, 건수 중심적 즉 콜별, 케이스별, 프로젝트별에 근거해 일거리를 수행한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받는 노동자로 확정됐다.

그나마 영국은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율성에 기댄 노동이라는 빈틈만을 고집하며 노동자 지위 자체를 부정한다.

디지털 강화에 따른 ‘플랫폼 산업’의 시대 노동자들은 ‘자기 기업가’임을 강요받는다. 자유와 자율성에 입각해 자기가 자신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개인으로 변형됐다. 강재호 교수는 ‘특수한 사회적 복종의 양식’이라고 설명한다. 유튜브 속 수많은 ‘크리에이터’ 역시 ‘자기 기업가’임을 강요받고 자각하지만 구글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긱 노동자’다. ‘제로 시간 계약’이지만 치열한 경쟁 속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요한 건 ‘제로’가 아닌 ‘제대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농담은 플랫폼 노동의 현실 속 ‘내 맘대로 하는 노동은 0시간’이라는 논리로 비틀린다. ‘자유’를 부르짖는 현 정부의 노동관도 비슷하다. 1주일에 120시간을 일해도 내가 노동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니 자기 기업가로 재설정함으로써 노동의 피로에서 해방되는 기적이 벌어진다. 노동자가 사라진 세상이므로 노조가 필요 없다는 기괴한 합리가 따라온다.

노동 현실 속 위계는 억지로 지워져 ‘제로’가 됐다. 그래서 한 금융회사는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제로투’를 춤춰보라고 했나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제로’가 아니라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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