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제 성찰의 시간으로

2023.05.22 03:00 입력 2023.05.22 03:05 수정

유행이 시작되고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 어려웠다. 관을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구덩이를 크게 파서 시신을 한꺼번에 매장하는 모습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병상이 모자라고 의료인이 부족했다. 특히 간호사 부족이 심각해서, 퇴직한 이들에게까지 동원령이 떨어졌다. 치료법이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절박한 심정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이나 과산화수소 같은 의약품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저명한 의학잡지들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논문들을 쏟아냈다. 젊은 환자들이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급작스레 상태가 악화되기도 했고, 어떤 환자들은 냄새를 못 맡는 증상이 몇 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손을 씻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 밀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권고했다.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위험이 과장되었다며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유행의 파도마다 ‘이제 피크는 지나갔다’며 근거 없는 안심을 만들어내는 정치인도 있었다. ‘독일인이 바이러스를 몰고 왔다’는 거짓 선동을 확산시키는 신문도 빠지지 않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이 익숙한 모습은 지난 3년의 지구촌 이야기가 아니다. 100년 전, 인플루엔자 팬데믹 시기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2004년 출판된 미국 역사저술가 존 배리의 <대단한 인플루엔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 이야기>를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에 읽었다. 페이지마다 데자뷔를 경험했다.

물론 그간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100년 전엔 유행이 다 저물도록 끝내 병원체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폐렴구균,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같은 세균이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헷갈리게 세균에 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인지 불만이었는데, 이런 사정이 있었다. 100년 뒤 인류는 RNA 바이러스를 찾아냈고 백신과 치료제도 놀라운 속도로 개발했다.

하지만 미지의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다급함에서 비롯된 비이성적 행동, 이 불안에 기대어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은 21세기 인류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또한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했어도, 환자가 급증할 때 병상을 신속히 늘리고 인력을 확보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과제였다.

우리가 100년 전 팬데믹으로부터 배우고, 조금 더 긴 안목으로 코로나19 대응에 나서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짧고 굵게 끝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팬데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플루엔자 팬데믹도 1917년 시작되어 1918년에 대규모 사상자를 낸 후 크고 작은 유행을 반복하며 1922년 1월까지 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간헐적 폭증에 대한 대비만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가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교육과 돌봄, 의료체계의 개편, 사회적 취약 집단과 영세자영업자 보호 등은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에는 너무 중요하고 장기적 영향이 큰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는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를 선언했다. 그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11일 대통령이 나서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선언했다. 국내 첫 감염자가 확인되고 모두가 공포에 휩싸인 2020년 1월을 돌이켜 본다면, 종식 선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미지근’이다. 매일 쏟아지는 굵직한 정치·사회 이슈 때문에 코로나19는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코로나19 팬데믹을 돌아볼 때다. 교훈을 남겨두지 않는다면 다음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난 3년을 비판적으로 복기하고, 100년 전의 경험, 동시대 다른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찾을 시간이다. 정치방역, 과학방역의 헛된 이분법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지적 겸손함과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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