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구래구래

여기선 이웃동네 구례를 가리켜 ‘구래구래’ 두 번 불러야 구례인 줄 안다. 친구가 뭔 말을 하면 ‘구래구래’(그래그래) 두 번씩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처럼. 그러면 구례는 우리를 따뜻한 지리산 엄니 품속으로 이끌고 그 산허리로 그득히 안아준다.

구례 산너머 또 구례, 굽이굽이 산비탈 동네. 할머니들처럼 뭔 말을 하든 두 번 연속 되씹고 반복을 해야만 귀에 박히고 ‘알아묵게 되는’ 길목과 봉우리들.

구례가 고향인 친구와 후배들이 여럿 있는데, 가끔 만나는 제약회사 다니는 후배 왈 소설가 정지아 샘의 아버지가 제 외삼촌이래.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이야길 살짝 꺼내더라. “아 그래? 당신 누님에게 <아버지의 해방일지> 그 소설책 잘 읽었다고 전해주소.” 요새 소설가를 찾는 이가 많으니 쉬엄쉬엄 한 끼니 같이하자 청했다. 팬 미팅보다는 집안 식구들끼리. 소설에도 약간 비틀어 나오는 얘기지만 정지아란 이름엔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가 담겨 있다고 한다.

광양의 백운산이나 화순의 백아산은 외삼촌이 빨치산 활동을 했던 기나긴 산줄기. 깊은 골짜기에서 피리를 불고 나오는 것은 ‘방귀’만이 아니렷다. 머슴살이 소작농에다 독립투사나 지식인들로 뭉친 빨치산들이 풀피리를 불며 산허리를 휘돌던 시절도 엄연한 사실. 복지와 평등을 뭉개고 민초와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면 반드시 유혈 충돌이 터진다. 먹고살자는 것을 이념의 잣대로 들이대던 시절은 냇물처럼 멀리 흘러갔으나 요새도 엄연한 줄기가 공정이요, 평등이다.

작달비가 부처님오신날 연휴 내내 내리고, 자꾸만 내려쌌는데 집구석은 습하고 제습기도 없고 심심하고 괴로워. 몸이 어디 고장나서 먹는 약은 또 한 움큼. 아냐 아니야 도리질을 치다가 말고 구래구래 하면서 구례나 살짝 놀러갈까. 산나물 비빔밥 먹으면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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