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라

2023.09.17 20:32

지난 2월 이 지면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글을 썼다. 올해 초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가 공개된 이후 ‘마침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이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여기에 이번에도 개혁을 하지 못하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조바심도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응원하는 마음보다 조바심이 더 커졌다.

지난 2월에 칼럼을 쓸 때보다 남은 ‘오늘’은 줄어들고 ‘내일’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란 말로 자위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많이 늦었을 때’가 훨씬 많다. 국민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에서 “2041년에는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구체적인, 또 충격적인 결과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연금개혁에 속도가 확 붙을 줄 알았다. 실제로 국회가 분주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관련 뉴스가 쏟아지면서 국민연금에 관한 시민의 관심도 잠시 높아졌다. 당시 칼럼에서 지적한 ‘오늘 할 일을 오늘 할’ 기회가 5년 만에 다시 오는 듯했다.

그때뿐이었다. 지난 2월8일 국회 연금특위가 한창 속도를 내던 연금개혁 논의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여야 간사들이 ‘얼마만큼 더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이냐’에 집중됐던 논의를 멈춰 세우고 기초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안부터 짜겠다고 ‘선언’했다. 여야 모두 당 차원의 연금개혁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민간자문위원회만 바라보다 갑자기 구조개혁을 들고 나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정책을 뒤로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연금개혁 관련 뉴스가 잦아들었고 시민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담당 기자들이 애써 취재해 쓴 기사를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행히 연금개혁의 속도가 떨어졌을 뿐 멈추지는 않았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 1일 재정안정화 방안을 공개했다. 핵심은 1998년 이후 동결된 현행 보험료율(9%) 인상이다. 12%에서 15%까지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연금을 받는 연령을 최장 68세로 늦추는 안, 기금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안을 조합해 총 18가지 시나리오가 나왔다. ‘경우의 수’가 18가지나 돼 엄청 복잡하게 보이지만 목표는 명확하다. 재정안정화를 꾀해 올해 국민연금에 처음 가입하는 사람이 평균수명까지 사는 동안에는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지급’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이제 더 많은 숙제가 남았다. 재정안정화의 전제는 보험료율 인상이다.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와 사용자를 설득해야 한다. 직장가입자는 사측이 보험료 절반(4.5%)을 부담한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지역가입자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한꺼번에 보험료율이 크게 뛰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8세로 높이는 안도 가입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정년 연장 등 고용정책과 연계돼야 한다. 현재보다 높여 잡은 기금수익률 목표(5~5.5%)를 실현할 수 있을지 회의론도 있다. 무엇보다 현 세대보다 더 큰 부담을 안을 것이 뻔한 다음 세대를 어떻게 설득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진전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 사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이라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도 연금은 받을 수 있다. 나를 비롯한 현 세대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세대의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현재와 같은 저출생이 수십년간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2060년 기준 보험료율은 34.3%로 치솟는다. 현재 보험료율(9%)의 4배에 가깝다.

지난 1월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전병목 위원장은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금 소진 시점의 차이는 5년 전에 개혁을 연기한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5년 뒤에 또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복지부는 오는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이때까지 정부가 방안을 내야만 그나마 연금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논의에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다음 정치권 합의가 필요하다. 이 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 것’이 대부분 맞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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