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에 애연가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쯤에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근엄하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차오른다. “자, 질문 있소?” 그러면서 담배 연기를 맛있게 내뿜던 교수님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물론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겨울에도 실외 흡연구역에 모여서 너구리굴을 만드는 흡연자들, 섬뜩한 경고 사진이 부착된 담배를 선뜻 사는 흡연자들을 보면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아니, 자기 목숨을 태우는 담배가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옛날 그 교수님의 흐뭇한 표정을 떠올리니, 이러한 타박은 비흡연자가 뭘 모르고 떠드는 말임을 비로소 알겠다. 담배는 정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담배를 끊기가 몹시 어려운 이유다.

왜 사람들은 니코틴, 코카인, 알코올, 카페인, 모르핀, 헤로인 같은 향정신성 약물에 빠져들까? 흔히 알려진 과학적 설명은 이렇다. 우리의 두뇌는 음식, 성관계, 운동, 남들의 인정처럼 먼 과거의 환경에서 조상의 번식에 필수적이었던 자극에 반응하여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쏟아낸다. 짜릿한 쾌락이 밀려온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자극을 주는 특정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갈비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족하고,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부족하다.

운 나쁘게도, 니코틴 같은 약물은 우리 두뇌에서 뜬금없이 도파민을 방출시켜 우리에게 쾌락을 안긴다. 특히 지난 몇천 년 동안에 이루어진 기술 발전으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약물 남용은 진화적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를테면, 순한 맛의 필터담배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아편에서 헤로인을 고농도로 뽑아내게 되었다. 증류 기술을 통해 독주를 만들게 되었다. 요컨대 향정신성 약물은 두뇌의 보상 중추를 멋대로 ‘강탈’하여 우리가 백해무익한 행동을 일삼게 한다. 테러범이 항공기를 공중 납치하여 건물을 향해 돌진하게 하듯이 말이다.

이 하이재킹 가설은 문제가 있다. 바로 약물이 ‘어쩌다, 우연히, 뜻밖에’ 도파민을 방출시킨다는 대목이다. 약물을 추출하고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현대의 발명품이지만, 약물 자체는 수억 년 전부터 있었다. 왜냐하면 대다수 약물은 식물이 오랜 세월을 통해 제조해 낸 독소이기 때문이다(알코올은 흥미로운 예외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뇌가 독소를 피하긴커녕 열렬히 추구하도록 자연 선택이 내버려 두었다는 말인가?

동물과 달리, 식물은 병원체와 포식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그래서 식물은 자신을 먹으려는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곤충, 초식동물 등을 물리치고자 독소를 진화시켰다. 예컨대 담배라는 식물 종은 초식동물의 신경계를 교란하는 니코틴을 만들었다. 이에 맞서서 초식 동물은 식물 독소를 한사코 피하도록 진화했다. 식물을 입에 넣으면 쓴맛수용체가 작동한다. 담배를 처음 피우면 심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에 시달리는 현상도 니코틴 독소에 대한 방어이다.

그런데 식물을 공격하는 병원체의 상당수는 인간 같은 동물도 공격한다. 식물이 병원체에 대항해 공들여 만든 방패인 독소를 인간이 슬쩍 가져다 쓰면 어떨까? 독소를 무작정 피하기보다는, 이득은 늘리고 손실은 줄이게끔 독소 섭취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편이 더 낫다. 진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하겐은 인류는 회충, 편충처럼 신경계를 지닌 장내기생충을 제거하는 건강상의 이득을 얻기 위해 향정신성 약물의 섭취를 꼼꼼히 조절하도록 진화했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니코틴은 장내에서 기생충의 신경계를 마비시켜 기생충이 장벽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한다. 약국에서 파는 구충제도 니코틴과 동일한 원리로 장내기생충을 몰아낸다.

하겐과 그 동료들은 중앙아프리카의 아카족을 상대로 실험했다. 아카족은 마을에 자생하는 담배를 즐겨 피울 뿐만 아니라, 기생충에 많이 시달린다. 예측대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기생충에 덜 감염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상용 구충제를 복용한 사람들은 가짜 약을 복용한 대조군에 비하여 그 후에 담배를 피우는 양이 줄어들었다. 기생충을 없앤 마당에 굳이 독소를 흡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담배 속의 니코틴은 끔찍한 독소다. 먼 과거에는 천연 살충제로 약간의 쓸모가 있었다. 약국이 널려 있고 장내기생충 자체가 드문 오늘날에는 그 쓸모조차 사라졌다. 담배가 주는 위로는 기생충 감염을 피하게끔 자연 선택이 꾸며낸 환각이고 허상이다. 미련 없이 끊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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