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은 없었다

2023.12.27 22:24 입력 2023.12.27 22:30 수정

이스라엘 출신의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에게 노벨 평화상을 줬어야 한다고 했다. 핵무기가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적은 물론 우리 편도 파멸시키는 ‘집단(동반) 자살’로 바꾸어놓아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면서 하라리는 지금은 평화를 사랑하는 정치인, 사업가, 지식인, 예술가 등의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대가 됐다고 했다. 과거에는 전쟁을 통해 적의 영토를 약탈하거나 병합해 부를 획득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의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되다 보니 무력으로 정복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선 대외 교역과 투자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평화가 절실하다는 점도 근거 중 하나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세계적 석학의 통찰도 절반만 맞는 것 같다. 초강대국 사이의 직접적 충돌은 없었지만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내내 지속됐다. 무엇보다 최근의 어떤 전쟁보다 끔찍한 민간인 살상을 초래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가자지구 주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세밑을 절망으로 물들이고 있다. 발발한 지 석 달도 안 된 이 전쟁으로 벌써 가자지구 인구의 1%가 넘는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아동과 여성이 70% 정도를 차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에서는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살육전으로 불리는 참호전이 벌어졌다. 전황이 정체되면서 영국·프랑스·벨기에 등 연합군과 상대방인 독일군은 각각 전선에 참호를 파고 들어가 대치했다. 병사들은 장교의 돌격 명령에 참호에서 튀어나와 적진으로 향했고, 당시 개발된 최첨단 무기인 기관총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갔다.

끔찍한 참호전이 이어지던 1914년 12월24일. 독일군 참호에서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캐럴을 불렀다. 영국군 참호에서 “앙코르”로 화답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양측 병사들은 비무장 상태로 중간지대에서 만났다. 병사들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담배와 음식, 기념품들을 교환하고 뒤섞여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참호 주변에 방치된 시신들을 국가별로 분류해 장례를 치렀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축구경기도 열었다. 병사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전쟁이 멈춘 이 전대미문의 평화를 후대 사가들은 ‘크리스마스 휴전’이라 불렀다. 휴전은 한 달 정도 이어졌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가자지구에서도 크리스마스 휴전을 고대했으나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아기 예수가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성탄절에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계속됐고, 하루 사이 250명이 더 죽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외에도 올 한 해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전쟁이 계속됐다.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미얀마 등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서 병사들은 물론 민간인 희생도 커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전쟁의 공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도발과 ‘죽음의 백조’라는 미 전략폭격기가 시위하는 한·미·일 연합훈련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북 간 9·19 군사합의가 파기되면서 접경지역에서 우발적이건 계획적이건 국지전의 위험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동서고금 대부분의 큰 전쟁들은 권력자들이나 엘리트들 사이 권력 다툼으로 벌어진 것들이다. 권력자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가장 크게 희생되고 고통받는 이들은 병사와 민초들이다. 전쟁터에 내던져진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휴전의 주인공들처럼 그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고 전쟁이 빨리 끝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며칠 뒤면 2024년 새해다. 전쟁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새해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 전야 미사에서 정의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평화를 바라는 교황의 호소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정의로운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자가 정의로운 자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이 넘치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희망마저 없으면 이 황량한 시대를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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