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과 바름

2024.01.10 20:00 입력 2024.01.10 20:03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 발음과 바름

자고로 현지인과는 발음이 ‘바름’이어야 말이 통한다. 영어가 짧으니 바르지 못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게 돼. 한 꼬마가 유치원에서 원어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마침 할머니가 집에 오셨대. “할무니, 나 토매이러~” 할머니는 놀라서 손주를 화장실로 급히 안고 갔대. 토마토가 먹고 싶단 소리였는데 토하겠다는 줄 알아들은 거. 누가 피식하면 격노하며 쓰는 말 ‘카르텔’도 뭔 말인지 도통 알아먹질 못하겠다. 여름 내내 앵앵거리던 파리, 파리떼가 시꺼멓게 엉겨 붙은 똥. 나아가 뭐 묻은 자신을 먼저 성찰할 때 써야 할 단어렷다. 그러고 보면 파리도 지역에 따라 발음을 잘해야 알아듣게 된다. 전라도 전역에선 포리라고 해. 경상남도에선 깡아리, 윗지방에선 포랭이, 강원도에선 파래이, 파랭이, 함경도에선 뽈이라고 한단다. “포리떼 모구떼(모기) 때문에 징허던 여름보다는 안 낫소야.” 대문을 활짝 열고 살던 할매집, 오랜 날 자물쇠가 잠겨 있다. ‘원망’과 ‘앙심’으로 살아온 원앙 부부 말고 진짜 다정한 원앙 부부였는데. 영감 사후, ‘솔로 지옥도’에서 심심한 노후. 게다가 약을 손바닥 가득 끼니때마다 후속타로 삼켜야 해. 그래도 산밭에 행차할 땐 유머를 장착한 사투리를 들려주곤 하였다. 똑같은 얘기를 처음 하는 듯 두 번 세 번. 원래 소뼈도 두세 번은 우려먹는 법이니까. 암튼 할매는 올봄에 퇴원을 하실 수 있을까나. 그분에게 사투리 발음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예전엔 아침마다 골목을 누비며 똥퍼요~ 똥퍼요~ 하고 다니던 직업이 있었다. 푸세식 변소로 살던 시절. 그야말로 으뜸 애국자. 동포여~ 동포여~로 들리던 그 목소리. 겨레를 깨우던 이들이 사라진 뒤, 틀어 놓은 아침 뉴스는 무서운 소식들뿐이다. 죽고 죽이고, 죽이려 들고, 차분하고 인자한 말보다는 격노하고, 말 따먹기 조롱하는 게 일상다반사. 발음이 바름이면 세상이 좋아질까. 맑은 샘 같은 친구 만나서 선하고 고운 말로 귀를 씻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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