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카드인가, 포커카드인가

2024.02.14 20:22 입력 2024.02.14 20:23 수정

카드로 지은 집. 포커카드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은 종이 탑을 말한다. 지반도 기둥도 없는 이 가짜 집은 곧 무너질 듯 위태로운 상황과 계획을 은유한다. K팝 산업도 카드로 지어졌다. 오늘날 K팝 산업의 누각을 지은 건 바로 랜덤 포토카드다. 포토카드는 이름 그대로 신용카드 크기의 작은 사진이다. 보통 K팝 아이돌 얼굴을 크게 인쇄해 앨범에 무작위로 끼워파는 것을 칭한다. 포토카드는 인증샷 문화와 어우러져 덕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K팝 산업이 급격하게 덩치를 불리며 더 많은 ‘판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부터 재미도 감동도 없게 됐다. 앨범에 들어 있는 버전별, 멤버별 포토카드에 팬사인회 등 이벤트를 미끼로 한 비공식 포토카드까지 더해 수집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짓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포토카드는 작은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넘어 K팝 산업의 사행성 경영전략의 상징이 되었다.

랜덤 포토카드의 유해성은 기획사가 지배적 위치를 악용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일례로 SM은 멤버 수가 20명이 넘는 소속 그룹의 2만5000원짜리 피겨(피규어)를 랜덤으로 판매해 물의를 빚은 적 있다. 하이브는 일부 소속 가수가 출연하는 음악방송 녹화에 대해 자회사인 위버스샵에서 여러 버전의 음반을 세트로 구매해야만 현장 관람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음악방송 주최는 방송국이 하는데 기획사가 월권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버스샵은 상품불량, 배송과 환불처리 지연으로 문제가 끊이지 않지만 팬들은 어쩔 수 없이 희박한 당첨 확률에 도전하며 ‘룰렛’을 돌리고 있다. 도를 넘은 상술로 팬들을 소비자 역할에 철저히 가두면서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은 어느덧 K팝 업계 게임의 법칙이 되었다. 국가전략산업 지위에 오른 K팝 업계의 주요 경영전략이 야바위에 가깝다는 사실은 참으로 볼품없고 창피한 일이다.

기만당하는 것은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전자상거래 등에서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YG플러스 등 아이돌 굿즈 사업자 8곳에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개선의 기조 없이 갈수록 더 많은 상품을 더 교묘한 상술로 팔고 있다. 묵과해선 안 되는 최근의 사례로 ‘플랫폼앨범’ 보편화를 꼽고 싶다. 플랫폼앨범은 CD 대신 온라인 음악 플랫폼 감상권을 주는 미니 음반이다. K팝 산업의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며 구성품을 최소화한 플랫폼앨범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화려한 눈속임에 머물러 있다. 기존 CD 앨범 버전 수를 줄이지 않고 플랫폼앨범 품목을 추가해 전체 판매량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ESG 경영 명분과 원가 절감 효과까지 챙기고 있다. 갈수록 고도화되는 K팝 산업의 상술이 시장을 오염시키면서 지난해 공정위는 포토카드 끼워팔기와 하도급법 위반 소지 등에 대해 대형 기획사를 현장조사하는 등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K팝 산업 지각변동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SM 인수전 패배 직후 참여한 관훈토론회 기조연설에서 K팝 발전을 위해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카드로 지은 집은 아무리 크게 지어도 카드의 집일 뿐이다. 강원랜드 입장권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과도한 게임은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해칠 수 있습니다. 적절한 휴식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게임을 하십시오.” K팝 산업이 벌이는 과도한 게임이 소비자의 행복을 해치고 한숨짓게 하고 있다. 그 한숨에 카드로 지은 집이 한순간 무너져버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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