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쓰임

2024.02.28 20:09 입력 2024.02.28 20:13 수정

150명 정도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연수 과정에 일주일째 참석하고 있다. 인적 자본을 쌓는 네트워킹이 퍽 중요한 행사인데,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를 부각하는 포인트도 다채롭다. “저는 좋은 데 많이 투자했어요” “저는 경력이 빵빵하답니다” “최신 트렌드는 다 저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사람들 모아볼게요” 등등 강점도 다양하다. 비즈니스 인맥을 강화하는 자리인 만큼, 필요에 따라 혹은 공통의 관심사에 따라 그룹별로 뭉쳐지기도 한다.

정확히 1년 전, 이 행사 참가자 수만큼의 글로벌 생성형 AI 스타트업들을 분석해 보고서를 냈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을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스타트업들이 대체 사용자들의 어떤 필요를 공략하려 들었는지를 촘촘하게 조사해 분류한 내용이었다. 한바탕 매출을 끌어올린 가상 프로필사진 생성 서비스도 있고, 마케팅 문구를 1초 만에 뽑아주는 회사도 있으며, 동영상을 맥락별로 잘라 자막을 자동으로 넣어주는 회사도 있었다. 각자가 포지셔닝하는 니즈는 대부분 더 높은 생산성, 그러니까 개인이나 조직이 생산할 수 있는 가치를 더 저렴한 값에 극대화하는 일들이었다.

1년간의 여러 시도들은, 이제 한곳에 뭉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샅샅이 흩어져 있는 기능들을 한 플랫폼 안에 모아서, 각 서비스 사용료의 총합보다 더 저렴한 구독 요금을 내고 쓸 수 있음을 부각하는 모델들이 나오고 있다. 기능적인 부분만 부각해 쓰임새를 분리해온 회사들은, 규모로 밀어붙이는 거대한 플랫폼들에 잠식됐다. 그래도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생성 AI 기술을 도입한 케이스들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바이오 회사에서 신약 개발의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콘텐츠 제작사에서 더 빠르게 작품을 만들어 내보내고, 유통회사에서 거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자동화를 활용하는 것처럼, AI 기술로 각 도메인의 문제를 푸는 회사들은 그만의 깊은 해자를 구축해가고 있다.

개인의 차원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나의 일을, 내 자식의 미래를 AI가 몽땅 대체할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쓰임새를 부각해 가치를 높이는데, 그 기능이라는 것이 사실은 AI 기술에 의해 금세 덮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진 기능형 인적 자원들을 한 몸에 모으면, 그 개인들은 ‘1인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변리사를 써서 IP를 확보하고,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고용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마케터를 활용해 매출을 올리는 이 모든 과정을 AI 기술 서비스들을 활용해서 나 혼자 다 처리할 수 있는 날이 수년 내 올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스스로 AI 기능들을 기가 막히게 조합해, 매력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 능력이 높은 가치를 확보할 것이다.

이런 프로세스가 가능하려면, 결국 개개인이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 자신의 분야 전문성이 단단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알고, 어떤 기능들을 보태야 효율적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지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공부하자. AI에게 잠식당하지 않고 AI를 도구로 잘 써먹는 나만의 쓰임을 만들자. 이 이야기를 150명의 눈이 반짝반짝한 투자자들과 며칠째 진하게 나누고 있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학습하는 직업> 저자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학습하는 직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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