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담는 방법

2024.03.27 22:12 입력 2024.03.27 22:14 수정

봄이 오고 있다. 이맘때면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숲 소리 수집 신’이 떠오른다. 배우 유지태가 연기한 사운드 엔지니어는, TV와 라디오라는 디지털 매체 속에 꼭 맞는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소리를 센서로 모아 저장장치에 담는다. 인간 세상을 학습하는 인공지능도 이렇게 오프라인의 세상이 디지털로 전환된 것을 학습한다. 사람들이 찍은 이미지와 영상에 담긴 사물들의 이름을 익히고, 그 이름들의 관계를 학습한다. 눈이 많이 쌓이면 눈사람이 있구나, 숟가락이 있으면 젓가락이 있구나,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구나. 세상을 채우는 관계들을 토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세상을 배운다.

그런데 세상일이 꼭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꽤 잘 알고 있다. 가령 차도에 갑자기 공이 굴러 들어와 아이가 차도로 뛰어나올 수도 있고, 공유자전거가 애먼 도로가에 뉘어져 있을 수도 있으며, 타조가 도시 한복판을 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율주행 차량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에지 케이스에 대한 대처를 학습시키는 것에 오랜 기간 매달려왔다. 통계적으로 정상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예외 상황은 늘 벌어질 수 있다. 이럴 때 사람은 주체적으로 주변 사람, 또는 보험사에 전화하거나 소셜미디어에 이슈를 올려 문제를 해결한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푼다.

기계가 우리의 세상을 익히는 방법도 이러한 상호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전엔 없었던 아주 새로운 방법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계와 사람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기에 기술적 모자람이 컸다. 사람이 도무지 자연스럽게 대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의 발화 속도는 느렸고 표현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인간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퍽 섬세하게 받아칠 수 있는 현재의 언어 기반 기술은, 그래서 더욱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사람의 피드백 양이 늘고 품질은 더 좋아지니,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 타이르던 말투와 초등학생에게 조언하는 양태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인간 입장에선 더 고급 언어로 함축적으로 기계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 더 깊은 맥락을 대화로써 기계에 학습시킬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완벽한 상호작용은 여태 나에겐 강력한 이론일 뿐이었다. 가시적 근거 찾기란 영 어려웠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발견한 소셜미디어 영상은 말 그대로 확실한 증거가 됐다. 한 남성이 피아노로 작곡을 하는 과정에서 챗GPT와 말로 대화하며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었다. E플랫 메이저 스케일의 곡을 연주하던 그는, 특정 마디에서 F 마이너 코드를 사용하곤 영 전개를 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챗GPT는 조언했고, 그 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남성은 매우 기뻐했다. 정말로 말로써, 기계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단지 양적으로 늘어나 쌓이는 데이터뿐 아니라, 인간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시계열적으로 쌓이는 지식들은 지금까지 모았던 데이터들과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개발자와 연구자들 스스로가 기술적으로 한정지어둔 경계들 또한 허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짜릿한 순간 이후에 펼쳐질 세상의 변화가 무척 기다려진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학습하는 직업> 저자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학습하는 직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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