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인사동

2024.03.28 21:53 입력 2024.03.28 22:03 수정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

자본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갈수록 잃어가는 ‘거리의 맛’

인사동 1971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인사동 1971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인사동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인사동 2024년 |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탑골공원 길 건너편에서 안국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0.7㎞의 길을 인사동길이라 부른다. 인사동길은 원래 안국동천을 복개해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지금의 돌길 형태의 길은 건축가 김진애의 설계로 2000년에 재조성된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어 양반들이 벼슬에 못 오르자 북촌에 거주하던 양반계층이 붕괴되었다. 그리하여 양반들이 소유하던 고서화, 도자기 등 골동품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1926년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건립되자,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인사동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인사동은 골동품 상점으로 유명했지만, 가짜 고서화 사건 등으로 권위가 실추되자 1960~1970년대에 화랑이나 표구, 필방, 공예품 등 미술 관련 상점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미술 관련 상점들이 늘자 미술 전시장들도 늘어나게 되었고, 그리하여 작가, 예술인 등이 모여들다 보니 전통찻집, 토속음식점 등이 생겨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25년 낙원동에서 공평동까지 ‘신작로’가 뚫렸는데, 그것이 지금의 인사동4길과 5길이다. 이 길과 인사동길이 만나는 곳을 인사동 네거리라 부른다. 1971년과 반세기가 지난 현재 사진은 인사동 네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1971년 사진에는 화랑 등이 1층에 있었던 반면, 지금의 사진을 보면 임대료가 높은 1층에는 젊은이들이나 관광객을 겨냥한 액세서리점, 기념품점, 옷가게 등이 있고 표구사 등은 2층 위에 위치한 것이 달라진 모습이다.

1987년에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창립되었고 1988년에 인사동은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다. 2000년 돌길 조성 이후 2002년 한국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인사동은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거리로 등극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오랫동안 인사동을 지켜온 상점과 업체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인사동은 갈수록 거리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

외부 자본이 유입되면서 임대료가 상승하고 그 결과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서울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시장은 동등한 경제력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들의 경쟁시장이 아니다. ‘자본권력’이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따라서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제도적인 대책이 없다면 ‘거리의 공동체’는 늘 사라지고 말 것이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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