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성장을 멈추는 까닭

2024.03.28 21:58 입력 2024.03.28 22:03 수정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유권자가 무려 60%다. 산업화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경제발전만 우선시하다가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면서 사회문제에 차차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경제발전 지수가 높다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라는 뜻이다. 기후 유권자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이제 한 걸음 나아갔다는 방증이다. 친환경으로 포장한 그린워싱 정책들 사이에서 진짜 기후공약을 찾아내기 위해 기후 유권자들은 조금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기후공약을 포함한 전체 공약에 대해 따지고 물어야 각 정당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진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후공약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는지 확인하자. 기후공약을 우선순위의 어디쯤에 두었는지를 확인한다면 표를 의식해 짜깁기한 가짜 기후공약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함께 제시한 다른 정책들과 기후공약을 비교해보면서, 과연 그 공약들이 나란히 추진될 수 있는 정책인지 판단해보자. 기후위기는 오로지 경제발전만을 우선시한 결과다. 성장과 개발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했다면 흐름에 대충 맞추어 기후공약을 곁들인 비빔밥 정책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녹색사회경제체제로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자. 문제 해결에 급급한 사후대처가 아닌 새로운 상상력과 전환의 시대에 걸맞은 진짜 녹색의 공약인지. 재난 피해자들에게 각 정당이 어떻게 대응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살피기 바란다. 위기상황을 예방하거나 대처하지 못했다면 기후위기를 극복해낼 역량 또한 갖추지 못했을 테고, 피해자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보상하지 못한 정당이 전 지구적 거대한 재난에서 우리를 구해줄 리 만무하다. 기후위기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일어난 사회적 재난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무엇보다, 현혹되지 말고 근본을 보자. 기후공약은 공존의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아는 철학에 기반하고, 자연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멸종위기 동물을 이야기하지 않는 기후위기 정책은 인스턴트다. 500년 된 설악산 금강송이 쓰러져 나가는데 개발사업에서는 여전히 손 뗄 생각 없는 공약도 가짜다. 최하위 소득층의 2000배나 되는 공해를 일으키는 최상위 소득층에 대한 제재와 분배정의를 말하지 않는 기후정의는 거짓이다. 10·29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지 않은 이들도 기후위기를 논할 자격 없다.

나무가 성장을 멈추는 이유는 혼자서 숲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자만 높이 자라 하늘에 닿지 않고 옆자리 나무들의 공간을 넘어서지 않으며 어느 단계에 이르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고 멈추어야,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소수정당이 씨앗을 틔우지 못하는 척박한 정치토양 또한 성장제일주의가 낳은 우리 사회의 비극 아니었는가?

이제 잠시 성장을 내려놓자. 죽어가는 생명의 편이 되어주자. 그것이 지금 비명을 지르는 날씨를 되찾는 일이고 위험천만의 나락에 던져진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길이다.

최정화 소설가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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