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농촌 마을 ‘자존감 상징’

2024.04.01 20:08 입력 2024.04.01 20:10 수정

김천 향천리 직지문인송

김천 향천리 직지문인송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큰 나무들이 있다. 정이품 벼슬을 받아서 ‘정이품송’이라 불리는 나무를 비롯해 임금이 하사한 한 쌍의 소나무여서 ‘쌍군송’, 밭일하는 어머니의 휴식을 위해 심은 나무여서 ‘효자송’ 등이 그런 경우다.

천년고찰 직지사가 자리 잡은 경북 김천 향천리에는 ‘직지문인송(直指文人松)’이라는 이름의 소나무가 있다. 300년 전에 해주정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뒷동산 언덕 마루에 서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신목(神木)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왔다.

나무 높이 11m, 줄기 둘레 5m인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소원을 모두 이루게 해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이 같은 소문 때문에 멀리에서도 자식을 낳기 원하는 아녀자들이나,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학동 가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무 근처에 신사(神社)가 설치돼 있었고, 일제 침략자들은 신사가 아닌 곳에서 소원을 비는 일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제 순사의 눈을 피해서라도 굳이 이 소나무를 몰래 찾아가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직지문인송’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의 반경 100m 안쪽에서 세 명의 문인이 나왔다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시인이자 조각가인 홍성문, 시인 이정기, 그리고 김천 최초의 소설가 심형준이 그들이다. 평범한 농촌 마을에서 세 명의 문인이 나온 것을 자랑하고 오래 기억하기 위한 마을의 자존감이 지어낸 이름이다.

이 나무가 더 특별한 건 나무의 보호 상태와 주변 환경이다. 나무가 서 있는 언덕 주위에 울타리를 세우고, 축대를 쌓았으며, 나무에 오르는 길은 나무 계단으로 단아하게 정비했다. 국가 예산으로 지키는 천연기념물 나무에서도 보기 어려운 대단한 정성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보여주는 오래된 마을의 자존감이 담긴 큰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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