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가는 정치와 슬픔의 공화국

2024.04.08 20:08 입력 2024.04.08 20:09 수정

10일 제22대 총선의 결과가 나온다. 선거 이후의 풍경은 어떨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한 편의 복수극이 시작될까? 서로를 심판하겠다던 거대 양당은 어떤 공방을 이어갈까? 관전 지점은 많겠지만 내 관심은 복수와 심판보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내건 비슷한 공약의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부선을 비롯한 전국의 철도와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이다.

여야가 한통속인 지하화 계획

국민의힘은 경부선 철도와 경인전철, 주요 고속(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교통·인프라 격차 해소’의 첫 번째 정책으로 제안했다. 2025년까지 주요 도시의 도심을 지나는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되 지하화 비용을 지상의 개발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철도와 GTX, 도시철도의 도심 구간, 서울의 내부순환로 등을 예외 없이 지하화한다는 공약을 ‘민생을 촘촘히 챙기겠습니다’의 32번째 공약으로 제안했다. 관련 공약의 내용은 국민의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지하화는 앞으로 하겠다는 공약이 아니다. 2024년 1월9일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안’이 257명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이 2025년 1월3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니 철도와 관련된 지하화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다. 거대 양당의 입장이 같으니 계획은 빨리 진행될 것이고, 서울의 간선도로들이 이미 지하화 공사 중이니 전국의 도시들이 서울을 따라갈 것이다.

그런데 지하화가 어떤 격차를 해소하고 누구의 민생을 챙기는지 심도 깊은 논의가 있었던가? 국회의원 87%가 찬성한 특별법은 총 21조로 구성되는데,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철도 부지를 개발하는 내용이 주이고 지하화 과정에서 발생할 사고나 위험, 시민의 안전에 관한 조항은 없다. 개발이란 단어는 빼곡히 등장하지만 안전이란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물론 시행령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봐야 하겠지만 안전을 진지하게 다룰 가능성은 낮다. 바로 다음주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임에도 한국 정치는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쾌적한 생활여건을 조성하고 노후화된 도심 지역을 재정비하며 교통 정체를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민간자본으로 개발해서 지하화 비용을 충당한다는 계획은 토지 가격 상승과 투기, 대규모 재개발이라는 익숙한 수순을 밟을 것이다. 소수의 대기업과 지주들에게는 큰 이득이겠지만 대중교통 이용객이나 시민들에게는 엄청난 불편과 위험이 될 것이다.

대기과학자, 왜 출마를 결심했을까

이 기후위기 시대에 개발과 물량, 속도 중심의 계획이 타당한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하화가 아니라 공공교통시설의 확충과 정비인데 한국 정치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국회는 계산기를 꼼꼼하게 두드렸을 것이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21대 총선 후보자들의 최근 5년간 종합부동산세 납부자 비율이 18.4%였는데, 22대 총선에서는 더 올라가 납부자 비율이 27%이다. 우리가 드라마 같은 심판을 관전하는 동안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축제를 열고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파괴될지 모른다.

기성 정치인들이 지하에 몰두할 때 기상을 살피던 한 대기과학자가 정치에 뛰어들었다. 기상청 산하의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박사이다. 거대 양당의 비례후보 명단에서나 발견할 법한 경력의 소유자가 거대 양당도, 비교적 안정권인 위성정당도 아니고, 가장 위태롭다는 녹색정의당의 후보로 나섰다.

그는 왜 출마를 결심했을까? 심지어 당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비례후보 8번으로. 지지를 받지만 비난과 모욕도 감수해야 하는 선거 현장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그는 날선 심판의 말보다 김수영이나 밀란 쿤데라의 언어를 빌려 설움과 슬픔, 그럼에도 함께하는 행복을 말했다. 그리고 개발의 이익보다 이 위기의 시대를 함께 겪고 헤쳐 나갈 슬픔의 공화국, 그 슬픔에서 함께 사는 행복을 찾아낼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슬픔의 의미와 행복의 가치를 아는 과학자라면 땅과 바람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지키는 정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목해야 할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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