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뷰

반복되는 ‘중동의 비극’

2006.08.01 18:21

〈김철웅 논설위원〉

역사는 반복된다. 이 명제는 중동에서 다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레바논 남부 카나 마을에서는 어린이와 부녀자가 대부분인 민간인 56명이 몰살당했다.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무력 충돌을 벌이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공습이 잠자던 사람들을 덮친 것이다. 이 소식에 우리는 두번 전율했다. 첫째는 비극 자체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 비극 역시 ‘역사의 반복’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1996년 4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마을을 포격하자 17일 동안 ‘분노의 포도’로 명명된 보복 작전을 폈다. 당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민간인 100여명이 한꺼번에 숨진 곳이 바로 카나 마을이었다. 카나에서는 정확히 10년 만에 비극의 역사가 반복됐다. 반복된 것은 또 있다. 10년 전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로켓 발사대를 보호하기 위해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10년 후 이스라엘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주장을 반복했다.

내친김에 중동의 과거를 한번 돌아 보자. 1982년 9월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는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의 호위 속에 베이루트 외곽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에 진입했다. 그리고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벌어진 학살의 희생자 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레바논 경찰은 460명,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3,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현장 사진이 유포되면서 세계는 경악했다. 학살을 묵인·방조한 이스라엘에 국제적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군을 지휘한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이 사임한 뒤 사건은 유야무야 됐다. 샤론은 1984년 주택장관에 기용됐고 2001년 총리에 올랐다.

- 카나마을 10년전에도 학살극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늘 이런 식이었다. 땅을 강탈당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이스라엘은 철저한 보복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스라엘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자제 요구를 듣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수많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이행을 거부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42호다. 이 결의는 요르단강 서안, 골란 고원 등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아랍 문제 전문가들은 불법 영토 점령에 관한 이 유엔 결의가 실천되는 것만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스라엘의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1982년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무려 32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카나 학살 후 긴급 소집된 안보리에서도 즉각적인 휴전 촉구나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이 빠진 의장성명이 채택됐을 뿐이다. 이 역시 미국의 입김 탓이었다.

정치 비평가 노엄 촘스키 교수는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숙명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삼각형의 두 꼭짓점인 미국과 이스라엘은 ‘특별한 관계’다. 미국은 군사력 1위 국가인 초강대국이고 이스라엘도 세계 4위의 전력을 갖고 있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아직도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약소 민족이다.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이란 무제한적 지원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는 이스라엘은 결코 ‘다윗’이 아니다. 또 미국과 이스라엘은 PLO를 이스라엘의 국가 존재를 부정하는 ‘거부주의’라고 비난해 왔지만 진정한 거부주의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결권을 부인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촘스키는 이 삼각관계가 고착될 때의 파멸적 상황을 경고한다.

- 약자 저항·강자 보복 악순환 -

중동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이다. 중동, 하면 우선 분쟁이 떠오르고 그것은 파괴된 도시와 시신들, 돌 던지는 소년들, 울부짖는 여인, 난민 행렬 등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중동에서 그만큼 비극적 역사가 오랫동안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역사 반복의 고리가 가까운 시일 안에 끊길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며칠 전 레바논 사태를 두고 “중동에서 이 분쟁의 순간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광범위한 변화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고 연설했다. 그 ‘광범위한 변화’란 것 또한 필시 미국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될 것임을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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