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의 옹졸함이 던진 교훈

2019.08.01 20:38 입력 2019.08.01 20:50 수정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일본 아베 정부의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동차나 항공기의 주요 산업 소재인 탄소섬유에까지 규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관련법 개정, 행정절차 간소화 및 예산지원 등을 검토하며 소재 산업 지원 의사를 밝혔고, 기업은 정부와 함께 소재, 부품, 장비산업에 대한 국산화 가속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소재와 부품산업 중흥의 기회로 만들자는 분위기다.

[기고]일본의 옹졸함이 던진 교훈

그러나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이 빠졌다. 소재개발을 할 인재를 키우는 교육과 소재개발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과학의 육성이다. 최근 한 언론과 종로학원하늘교육의 공동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48.9%, 서울지역의 32개 대학 중 8개 학교가 자연계 기초과학 관련 학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책을 만드는 많은 사람은 기초과학이 국가 발전을 이끄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들은 기초연구 결과가 응용연구로 이어지고, 나아가 국가의 산업발전과 생산물로 이어져야 한다는 기초과학의 선형적 모델을 중시한다. 그래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전자기학의 아버지 톰슨은 1916년의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에 적용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죠. 단순히 자연의 법칙에 관한 지식을 확장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합니다.” 그는 한 예로 엑스레이를 들면서, 엑스레이가 수술실에서 총알 부상 부위를 찾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니라, 전기의 본질을 찾는 순수과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장이었던 크리스토퍼 르웰린 스미스는 입자가속기가 물리학의 기초연구를 넘어서 반도체, 비파괴검사, 암 치료를 비롯한 의료, 핵폐기물처리 등 다양한 분야로 전파된 것을 예로 들면서 기초과학이 사회의 문화에 이바지하고,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산업을 진작시킴은 물론 교육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오늘날 많은 자동차에 이용되는 유도코일을 개발한 건 자동차회사가 아니다. 물리학을 사랑한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하 273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 이론은 물리학자에 의해 연구되어 오늘날 병원에서 이용하는 MRI(자기공명영상장치)까지 확대되었다. 오늘날 꿈의 컴퓨터라 불리는 양자컴퓨터 역시 물리학의 양자역학 원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1900년 독일의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 개념을 도입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늘은 왜 파란가요?” “무지개는 왜 생기죠?” 이런 질문이 현대의 고해상도 현미경을 만드는 분광학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의 거대입자물리가속기연구소장이었던 밥 윌슨은 의회에서 가속기 연구소가 미국의 국방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 연구소는 국가 방위의 의미를 가치 있게는 할 거예요.”

우리나라 역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제출하는 연구계획서의 거의 마지막 부분의 질문 항목은 연구과제가 미칠 사회경제적 효과를 기술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는 자기 믿음에 기반을 둔 천문학적 숫자를 경제적 효과로 적어낸다. 행여나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음”이라고 기술한다면 과제로 채택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기초과학이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해서 탄생한 것이라면, 응용과학은 특정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응용과학이 낡은 방법을 개선한다면, 기초과학은 혁명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첨단소재, 부품, 장비산업은 분명 기초과학으로부터 시작한다. 꺼지지 않는 기초과학연구실의 불빛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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