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 집안 싸움할때 아니다

2000.07.27 17:26

현대 오너들의 집안싸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정몽구(MK)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맞대결에 정몽준(MJ) 현대중공업 고문이 가세해 형제간 갈등은 3파전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유동성 악화설로 그룹 자체가 잔뜩 불신을 받고 있는 마당에 무슨 심산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20도 안되는 지분으로 서로 이 회사, 저 회사를 차지하겠다고 대들고 있으니 이들의 안중에는 주주와 국민들이 없다는 말인가.

MJ의 현대중공업이 MH의 현대전자가 캐나다 CIBC에서 유치한 2억2천만달러를 대신 물어줬다며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한 만큼 외자유치 경위를 둘러싼 양측의 엇갈린 주장은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리라고 본다. MJ측의 주장대로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한 외자를 현대전자가 제대로 갚지 못해 2천2백여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현대중공업 주주들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현대전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3년 전의 일이지만 형제들끼리 집안살림을 주고받는 식으로 현대전자의 빚을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한 것도 큰 문제다. 이는 주주들 몰래 이뤄진 재벌들의 전형적인 부당 내부거래인 셈이다. 1천3백만주의 현대투신 주식을 놓고 담보물에 불과하다느니(MJ), 소유권이 넘겨진 것이라느니(MH) 서로 애매하게 말하는 것도 회사 재산을 무분별하게 사유물 다루듯 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MJ측에서는 단순한 돈문제이지 형제간 내분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그간 현대중공업의 지분변화를 보면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최근 MH계열의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로 등장함에 따라 MJ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파워게임을 시도한 게 분명하다. MH와 MJ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또는 MK가 MH의 견제를 뿌리치고 현대차를 장악할지는 전적으로 그들만의 관심사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현대의 신인도가 떨어져 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18만명의 현대 사원과 주주,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현대그룹은 오너들만의 재산이 아니다. 2003년까지 전자·건설·금융·서비스, 자동차, 중공업의 소계열로 분리하기로 한 대(對)국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분을 둘러싼 형제간 암투로 현대가 만신창이가 된다면 계열분리에 앞서 그룹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오너들의 지분을 서둘러 명확히 정리한 다음 지금의 황제식 경영을 주주 중심 경영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현대가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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