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빅 브러더의 감시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2010.09.01 22:55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과 남경필, 정태근 의원이 당내 의원 연찬회에서 불법사찰의 배후를 밝히라고 촉구하면서 사찰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앞에 두고 “이 의원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남 의원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온 국민을 감시하는 ‘빅 브러더’를 거론하며 “지금 이와 비슷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 강한 불만이 표출되고 당내 일각에서는 ‘패륜’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당 지도부는 ‘자제하자’며 어정쩡하게 무마하고 있는 모양이다.

세 의원의 주장으로 제기된 불법사찰 논란을 여권내 권력갈등으로 치부하려는 시각도 있으나, 그런다고 덮어질 사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들의 불법사찰에 대한 인식과 배후 수사 촉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친이명박계로 불리는 정 최고위원과 정 의원은 여권 내 속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검찰의 불법사찰 수사를 지켜보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렇게 여권 중진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수사를 국민들이 납득할 리 없다. 이들은 이미 어느 기관이 어떻게 자신을 사찰했는지 상당한 정황 증거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기관이 동원돼 작성한 듯한 사찰 보고서가 돌아다닌다고도 했다. 남 의원이 주장한 ‘빅 브러더’의 감시 실태를 다른 말로 옮기면 이 나라가 지금 ‘사찰 공화국’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사찰의 배후나 ‘빅 브러더’가 없다는 쪽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당사자들이 두고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다음주쯤 발표될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3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사찰을 지시한 사람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지워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한 사람도 없다. “일개 총리실 서기관이 스스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정 의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다.

이렇게 흐지부지 수사가 끝나는 것은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검찰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당장 소나기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게 뻔하다. “정권 말기에 야당이나 권력기관의 정보 누수로 인해 (이 같은 사찰 실태가) 폭로되면 다음 총선과 대선을 치르지 못하니 (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봉기하라”는 남 의원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불법사찰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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