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당 해산’ 무색하게 한 대법원의 ‘내란음모 무죄’

2015.01.22 20:34 입력 2015.01.22 20:51 수정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하혁명조직 ‘RO’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RO 회합을 개최한 인사들을 ‘주도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핵심 근거로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 해산을 강행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RO의 실체를 부인함으로써 헌재 결정의 정당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대법원 판결의 요체는 ‘내란음모 사건에 내란음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폭동 대상·목표에 관한 합의와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 전 의원 등이 사전에 모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RO에 대해선 “제보자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했다. 내란음모 무죄 선고는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합당한 판결이다. 다만 내란선동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부분은 유감스럽다. 선동을 포함해 내란죄는 중죄 가운데 중죄인 만큼 엄격한 판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이번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빌미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리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해왔다. 우선 정당의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주권자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순리인 만큼 사법기관이 정당을 강제해산한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판단했다. 또한 법리적으로도 일부 당원의 문제를 들어 당 전체를 위헌정당으로 낙인찍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전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소한 후자는 대법원 판결로 입증됐다고 본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엄밀한 증거 대신 모호하고 자의적인 ‘주도세력’ 개념을 동원했다. ‘주도세력’이 당을 장악해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숨은 목적’을 추구했으니 해산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 과정에서 주요 근거로 내세운 게 RO 회합이다. 헌재는 130여명이 참석한 회합을 ‘주도세력’이 개최했다는 이유로 10만 당원을 보유한 통합진보당 전체의 활동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RO를 ‘유령 조직’으로 결론내렸다.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에 차이가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헌재는 정당해산심판에서 민사소송절차에 따랐으며, RO 외에 통합진보당의 다른 문제점까지 검토해 해산 결정을 내렸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한 달 뒤면 나올 형사사건 확정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선고를 서두른 까닭은 뭔가. 당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정권이 흔들리던 상황과는 무관한 결정이었나. 헌재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민주주의는 관용과 포용, 다양성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한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러한 가치들에 정면 도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건이었다. 대법원 판결은 내란선동죄 인정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정권은 진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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