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의 ‘정부동일체 원칙’

2013.11.28 20:21 입력 2013.11.28 20:26 수정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대한민국 검찰과 관련해 종종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다. 모든 검사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자세로 한몸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검사동일체의 원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동일체’의 원칙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정동칼럼]한국 외교의 ‘정부동일체 원칙’

특히 우리의 통일 및 외교안보 정책에서 정부동일체의 원칙은 압권이다. 한·미동맹 문제에서 청와대의 입장과 달리 부처별로 차별화된 정책과 입장을 가질 수 없으며, 대북정책에서도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국정원이 동일체와 같이 움직인다. 일본의 우경화 정책에 대해서도 전 부처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대중정책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지 청와대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그런데 대북정책이나 외교에서 이러한 정부동일체의 원칙은 전략적 사고와 전략적 선택의 폭을 청와대가 미리 정해 놓게 되어 유연한 외교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꽤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일본이 우경화하며,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직된 외교는 아주 위험하다. 우리 외교가 부상하는 중국과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좀처럼 못 찾는 것이 그 경직성의 전형적인 예다.

단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보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필요에 따라 정부동일체의 원칙을 깨야 한다는 것이 답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사석에서 이러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중국에 대해 일본은 확실히 균형(balancing) 정책으로 간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에 대해 포용(engagement)과 위험대비, 즉 헤징전략을 쓰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에 대해 포용과 헤징전략을 쓰는 것에 대해 미국은 큰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헤징전략만을 보고 중국에 대해 미국, 일본과 함께 균형 정책을 써야 할지, 아니면 중국과 우호적인 교류를 해야 할지 매우 단순하게 고민하는 한국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분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어떻게 상호 충돌할 것 같은 포용과 위험대비 전략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 비결은 바로 미국 정부가 대중국 정책을 취할 때 정부동일체의 원칙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의 국방부는 중국이 미래에 위협세력이 될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중국의 군사력에 균형을 취하고, 때로는 중국을 에워싸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게 바로 헤징전략이다.

반면 미국의 경제부처는 중국과 경제부문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한다. 미국의 국무부도 중국과의 관계를 적절한 선에서 우호적으로 잘 유지한다. 미국의 민간부문이 중국 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학술교류, 유학생, 관광객 등을 따져보면 미·중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상호 얽혀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미국의 포용정책이다. 백악관은 필요에 따라 헤징에 무게를 실어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포용의 발언을 하면서 둘 간에 균형을 맞추어 준다. 결국 정부동일체 원칙이 없으니까 상호 충돌하는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게 가능하고, 이를 최고위 정책결정자인 대통령이 적절히 조합하면서 국가전략으로서 대중전략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국방부가 대중 포위전략을 취하니까 한·미동맹이라는 사고의 틀에 갇혀서 청와대부터 국방부, 외교부, 경제부처, 그리고 기타 모든 부처가 일심동체가 되어 어떻게 하면 중국이나 미국 국방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우리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왕좌왕한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통일부와 국방부와 기타 전 부처가 일심동체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동일체의 원칙을 깨면 중국이든 북한이든 포용과 헤징을 동시에 하면서 최종적인 조율과 균형을 청와대가 잡아주고, 전략적으로 이들을 상대할 수 있다. 조합의 수가 늘어나야 창조적이고 전략적이 될 수 있지, 조합의 수를 줄이면 그냥 경직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동일체의 원칙을 유지하는 한 조합의 수는 늘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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